‘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범야권 단일후보인 박원순 무소속 후보가 범여권 단일후보인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에 패배하는 것은 범야권으로선 상상하기조차 싫은 시나리오다. 내년 ‘4·11 국회의원 총선거’와 ‘12·19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필승카드로 준비 중인 범야권 대통합 구상이 헝클어지고 범야권 전체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이 경우 한나라당은 일각의 보수신당 구상 등 원심력을 차단하면서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가 패할 경우 민주당 내에서 박 후보가 입당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또 선거 전략 면에서 박 후보와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한나라당의 초기 검증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을 두고 책임론이 제기될 수 있다. 반면 비(非)민주당 쪽에선 민주당 지역위원장들과 조직이 적극적으로 돕지 않은 것을 두고 민주당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비정치권 출신 인사가 범야권 단일후보로 나가 패한다는 것은 범야권 전체의 역학관계의 변화를 시사한다.

지난 3일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박 후보가 승리하면서 주도권이 진보 시민사회 등 비민주당 세력으로 넘어갔으나, 본선 결과가 나쁠 경우 다시 민주당이 주도권을 쥐려 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컨설팅업체 e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26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역시 선거는 정당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으면서 (범야권 대통합 정당 추진기구인) ‘혁신과 통합’이 주장해 온 ‘원샷 통합론’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도 “조직의 힘이 재확인되면서 범야권 통합 구도가 ‘민주당 + 알파(α)’ 식으로 재편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주도권을 쥐지 못한 채 범야권이 장기 표류할 경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조기 등판론’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김 대표는 “안 원장이 응할지는 몰라도 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여전하기 때문에 ‘안철수 조기 등판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나 후보가 승리할 경우 한나라당은 흔들려 온 주도권을 회복하고 총선·대선 준비를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밖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보수신당 추진 움직임은 한풀 꺾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 후보 선거캠프를 친이(친이명박)계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향후 당권을 둘러싼 친이계와 친박(친박근혜)계의 경쟁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오남석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