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부근에서 침몰한 사고 첫날 안전행정부(소방방재청)·해양경찰청·해군 등 정부기관 간 무선 교신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정부의 사고 감지와 초기 위기 대응이 지장을 받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정부는 세월호 승선 인원, 구조자, 사망자, 실종자수 등 사고 기초 사실 파악에서 실수를 거듭해 지탄을 받았는데 이 역시 정부기관 간 매끄럽지 못한 의사소통 탓이라는 지적이다. 국가 재난안전통신망이 구축돼 활용됐다면 이러한 행정적 손실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재난 전문가들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문제점을 인지하고 사고 다음 날 통합 통신을 할 수 있도록 기지국과 무전기를 진도에 긴급 설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안행부 등에 따르면 정부 기관마다 호환성이 없는 무선통신망을 저마다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군이나 해경은 수십 년간 아날로그 초단파 무선통신(VHF) 방식으로 무선통신을 하고 있다. 특히 해경은 선박과의 무선통신은 VHF 방식을, 지역간 무선 교신은 KT파워텔의 상용망(아이덴 방식)을 빌려 각각 사용하는 등 다소 변칙적인 방식으로 무선 교신을 하고 있는 상태다. 해군은 VHF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VHF 방식은 수십년 동안 사용된 아날로그 기술로 전파 간섭이 심하고 통화품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가령 해경에서 관련 보고를 하려면 몇 차례의 보고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사고 기초 사실 파악과 관련, 안행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해경 간 매끄럽지 못한 의사소통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여객선 진도 침몰 참사와 같은 대형 재난이 발생할 경우 보고→지휘부 상황파악→지시 등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현 무선통신망 기반에선 이러한 정부기관 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방방재청은 정부기관 간 의사소통에서 문제점이 노출되자 사고 다음 날인 17일 오전 차량을 통해 테트라주파수공용방식(TRS) 기기와 무전기를 사고 현장인 진도 팽목항으로 가져가 임시로 무선통신망을 구축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지에 급파된 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경기소방본부·전남소방본부·해경 임시 상황실 관계자들, 그리고 진도 체육관 유가족 관리 요원들이 170여 대의 무전기를 받아 현재 사용하고 있다. 정식으로 하면 철탑을 세워 테트라TRS 기기를 설치해야 하지만 상황이 워낙 다급하다 보니 팽목항 부근 횟집 3층에 테트라TRS 기기를 설치했다. 소방방재청은 18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설치된 진도군청에도 테트라TRS 이동 기지국 차량을 급파하기도 했다.

국가 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은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이후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외국산 기술에 대한 종속 문제, 정부 특혜 문제, 경제성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이 사업은 12년째 표류하고 있는 상태다.

유회경 기자 yoolog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