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땐 그자체로 ‘새 역사’

2016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당락에 관계없이 이미 미국 역사에 첫 주요 정당 여성 대선 후보라는 역사를 썼다. 1920년 여성 참정권 허용 이후 96년간 그 누구도 깨지 못했던 ‘유리 천장’을 깬 것. 클린턴이 주요 정당 첫 여성 후보라는 고지를 처음으로 넘은 데 이어, 미국 사회의 가장 높은 최초 여성 대통령이라는 ‘유리 천장’을 깨면서 본인 자서전 제목처럼 ‘살아 있는 역사’가 될 것인지는 이번 선거 결과에 달려 있다.

미국 여성계로서는 주요 정당의 첫 여성 후보를, 1872년 빅토리아 우드헐이 여성 최초로 대선에 출마한 이래 144년, 1920년 여성 참정권이 허용된 이래 96년을 기다린 끝에 맞이한 것이어서 감회가 새롭다. 클린턴의 핵심 여성 지지자들은 이날 투표소에 1900년대 초 여성 참정권 운동을 상징하는 ‘흰색 바지정장’을 착용하고 등장했고, 일부는 흰색 복장을 한 채 투표했다는 ‘인증샷’을 올리고 있는 이유다. 클린턴도 지난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 흰색 바지정장 차림으로 등장한 바 있다. 클린턴은 당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순간 유리 천장이 깨지는 동영상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클린턴은 당선 시 승리 선언을 할 장소도 유리 천장이 있는 뉴욕의 제이컵 재비츠 컨벤션센터로 잡았다.

클린턴 본인도 이번 선거 캠페인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성차별적 발언과 음담패설을 집중 공격하면서 여성·가족 문제에 대한 차별적 어젠다를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여성·가족 문제를 핵심 어젠다(의제)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클린턴은 이미 연방예산 지출·저소득 가정 세금 감면 등을 통해 가족 수입의 10% 선으로 자녀 양육비를 절감하고, 12주 유급 양육휴가·병가를 허용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앞서 클린턴은 상원의원 재직 당시에도 남녀 임금 차별을 금지한 ‘공정임금법’을 발의했고, 국무장관 시절에도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적극 독려하는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클린턴이 당선된다 할지라도 짊어져야 할 무게가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240년간 백악관을 거쳐 간 총 44명의 남성 대통령과는 차별화되는 여성 대통령의 역할 모델을 창출해내야 한다는 숙제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캠페인의 캐치프레이즈였던 ‘준비된 대통령’에 걸맞은 안정된 국정운영 능력도 선보여야 한다. 클린턴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는 1857년 이후 처음으로 8년마다 정권이 교체되는 ‘8년 주기설’을 깬 만큼, 4년 단임 대통령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심리적 압박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클린턴이 당선되더라도 하원에서는 공화당이 다수당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겪었던 것과 같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의회에 사사건건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신보영 특파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