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이후 정국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23일부터 예산안 심의를 포함해 대부분 국회 의사일정이 중단됐고 야당은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내년 ‘4·11 국회의원 총선거’를 5개월도 남기지 않고 국회가 냉각기에 들어가면서 각종 민생법안 처리 가능성은 낮아졌고 여야는 급격히 쇄신 및 정계개편 논의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국회에서 이정희 민주노동당·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 다른 야당 대표들과 만나 한미 FTA 무효화를 위한 공동 투쟁을 벌여 나가기로 했다. 이 자리에는 정치권 외부 인사인 한미 FTA 저지범국민운동본부 인사들도 참여했다.

민주당 등은 이날부터 매일 오후 도심에서 집회를 열기로 했다. 민주당 등은 향후 국회 일정도 전면 거부하기로 했으며 헌법소원 등을 통한 법적 투쟁도 벌이기로 했다. 손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 FTA 비준 전면 무효를 선언한다”며 “이제 전면 무효화 투쟁에 나서고 내년 총선에서 국회 다수 의석을 얻어 재협상을 관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당분간 여론의 추이를 지켜볼 태세다. 한나라당은 23일 당 회의를 취소하고 전날 “내일 말하겠다”고 했던 홍준표 대표도 침묵을 이어갔다.

한나라당은 당분간 냉각기를 가진 뒤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예산안도 단독처리하기는 부담이 있는 만큼 야당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며 최대한 합의처리를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도 지역 민원예산 등을 예산안에 포함시켜야 하는 만큼 예산안 심사를 마냥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계산이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정치는 미리 예상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여야가 냉전 상태에 들어감에 따라 18대 국회에서 주요 민생법안 처리는 사실상 어렵게 됐다. 야당이 의사일정에 합의하더라도 예산안, 선거구 획정 등 핵심적 사안 처리에만 응할 가능성이 크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모두 지역구 활동이 바쁘기 때문에 법안 심의 시간도 촉박할 수밖에 없다.

여야는 앞으로 의정활동보다는 총선 승리를 위해 정계개편 논의 등에 더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당장 23일 야권통합 추진을 위해 중앙위원회를 열기로 했고 한나라당도 조만간 쇄신안 논의를 위한 의원총회 소집을 할 예정이다. 정치권 안팎의 여러 가지 움직임을 고려할 때 앞으로 정치권은 더욱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김병채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