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23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관련 조항의 재협상 약속은 유효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이 요구하는 ISD 조항의 폐기 또는 유보가 전제된 재협상이 아니라 ISD 조항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대통령이 지난 15일 국회에서 밝힌 ‘선(先) 발효-후(後) 재협상’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며 “한미 FTA가 발효되면 3개월 이내에 수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협정서에 명시돼 있는 만큼 국회의 요청이 있으면 정부는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ISD 조항의 폐기 여부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부터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다”며 “폐기가 국익에 보탬이 되는 것인지, 유지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먼저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 같은 입장은 재협상 요구에 앞서 ISD 존폐나 수정 내용에 대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 차원의 입장 정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미다. ISD 조항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의 요구를 그대로 미국에 전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도 15일 국회 방문에서 “국회가 (ISD 관련 의견을) 정부에 권유해 달라”며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고, 미국이 응하지 않으면 책임지고 응하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정부의 목표대로 내년 1월1일 한미 FTA가 발효될 경우, 정부는 내년 3월말까지 ISD 조항을 비롯한 협정서 개정을 요구할 수 있다. 변수는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일이 4월11일이라는 점이다. 정치권이 선거국면에 돌입하면 국회 차원에서 ISD에 대한 결론을 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청와대와 정부도 “ISD 조항은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국회 논의를 적극적으로 재촉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 때문에 야당이 ‘ISD 재협상’을 선거 쟁점으로 삼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영출기자 ev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