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8일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의 신용등급 강등 조치 이후 처음으로 국민 앞에 나섰다. 그러나 결과는 ‘수모’였다. 뉴욕증시가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 이후 진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낙폭을 키우며 급락했기 때문이다.

이날 뉴욕증시의 폭락이 오바마 대통령 탓만은 아니지만,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이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 것은 분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현재의 위기는 S&P가 만들어낸 허구의 위기라고 강조했으나 시장은 전혀 듣지 않았다. 오히려 오바마 대통령의 사태 파악에 불안감을 보이며 낙폭을 키운 것으로 해석된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선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부 신용평가기관이 뭐라고 하든 우리는 언제나 ‘AAA등급’ 국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시장도 우리의 신뢰도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점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AAAA’ 등급이 있다면 미국에 주고 싶다”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언급을 인용하면서 “나와 전 세계 대부분의 투자자들도 이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정쟁의 중단, 세제개혁의 필요성 등도 언급했지만 초점은 역시 S&P와 공화당에 대한 비판이었다. 정치시스템의 무능을 언급하며 공화당에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8일 백악관 기자회견은 오바마 대통령이 미 초유의 신용등급 강등 사태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자리였다. 전 세계가 오바마 대통령의 첫 발언을 주목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비장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등장했다. 뉴욕증시도 이날 오전 300포인트 정도 하락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기다렸다.

그러나 오후 1시30분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나자 증시는 낙폭을 키우며 600포인트 이상 빠졌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지난 주말종가보다 634.76포인트(5.55%) 하락한 10809.85에서 거래를 마쳤다. 2008년 12월1일 이후 최대 폭락이다. 미 정치권은 신용등급 강등 이후 대책마련보다는 S&P를 비판하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시장은 더욱 냉담하게 반응하고 있는 셈이다.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미국의 신용가치는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리더십 실패로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S&P는 예고한 대로 미국 국책모기지기관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금융결제 및 정산기관 등 공공기관들에 이어 뉴욕 라이프 인슈어런스 등 보험사 5곳의 신용등급을 모두 한단계씩 낮추는 등 추가 조치에 나섰다. 경쟁사인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발표해도 소용없었다. 시장은 정부가 아닌 S&P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다.

워싱턴 = 천영식특파원 kka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