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 명문화한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문구와 관련,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겨냥한 진일보한 표현이라고 설명했지만, 전문가들은 4일 중국이 북한은 물론 남측과 미국까지 겨냥한 다중적 의미로 분석하고 있다.

즉 북측에 대해서는 ‘추가 핵실험 중단’ 경고를, 남측에 대해서는 ‘핵주권’ 포기를, 미국에 대해서는 ‘핵우산·핵 전개 불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중국이 동북아전략에서 북한만을 ‘버퍼 존(완충지대)’으로 삼았지만 이제는 남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를 버퍼 존으로 확대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동성명에 표현된 ‘한반도에서의 핵개발을 확고히 반대한다’는 표현을 너무 안이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확고히 반대한다’는 어감만 강조했지, 대상인 ‘한반도에서의 핵개발’이라는 표현에는 애써 주목하지 않았다.

김흥규(정치외교학) 아주대 교수는 이날 오전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것은 북핵에 대한 경고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한·미 동맹 차원에서 전개될 한반도 정세변화와 한국의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국이 지역국가 단계에서 세계적 국가 규모로 사고를 전환하면서 과거 북한을 유일한 중국 방어의 버퍼 존으로 삼았지만 이제 한반도 전체를 버퍼 존으로 확대하려는 기본적인 전략과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중국이 ‘북한 비핵화’나 ‘북한 핵실험 반대’ 등의 직접적 표현을 포함시키지 않고 ‘한반도에서의 핵 개발 중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의도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천영우 전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은 “중국이 직접적으로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한반도 핵 개발 반대’라는 표현을 쓴 것은 한·중 간 논의의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공동성명에 명기된 이 표현을 놓고 ‘북한 비핵화에 대한 강도 높은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는 중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드러낸 상징적인 문구로 해석된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한반도 핵우산을 견제하고 미래 한국 정부의 ‘핵주권 포기’를 노린 고도의 노림수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아닌 한반도 전체를 대중국 견제의 완충지대로 삼으려는 중국의 전략 변화와 맞물려 있어 엄중한 인식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스스로 의미를 축소하고 중국의 주장에 동조화하는 경향까지 보여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특히 지난 20년간 ‘한반도 비핵화’가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며, 박근혜정부도 ‘핵무기 없는 세계는 한반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핵 개발’과 관련한 ‘전략적 모호성’을 포기하고 스스로 레버리지(지렛대)를 버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하고 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