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에서 16일 벌어진 미 역사상 최악의 교내총격사건의 범인이 한국인 학생 조승희씨로 밝혀진 가운데, 17일 오후 이 대학에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부, 버지니아주지사 등과 학생, 지역주민들이 참석한 대규모 추모식이 열렸다.

이날 미 전역으로 생중계된 추모식에서 부시 대통령은 “가슴에 슬픔을 가득 채운 채 오늘 블랙스버그에 왔다”면서 “오늘은 버지니아공대 커뮤니티를 애도하는 날이며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긴 날”이라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워싱턴 백악관에서 추도식장으로 떠나기에 앞서 “연방정부 기관들은 버지니아공대 사건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조기를 22일까지 게양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추모식장에는 조씨의 총격으로 부상 당했던 한국인 학생 박창민씨도 친구 10여명과 함께 참석했다.

이날 학생들과 주민 5000여명은 추모식장인 교내 대형실내농구장인 캐슬 콜로세움을 가득 채우고도 바로 옆 대규모 미식축구 경기장의 관중석과 잔디 밭에 빼곡히 앉아 총격사건으로 사망한 32명의 학생들을 추모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앞서 이날 오전 9시 버지니아공대는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은 한국 교포학생인 조승희(23·영문학과)라고 공식 발표했다.

웬델 플린춤 버지니아공대 경찰서장은 범인 조씨가 “미국에 영주권을 갖고 거주하고 있는 23세의 한국인 출신”이라며 “가족 주소지는 버지니아주 센터빌이지만 대학내 하퍼 홀 기숙사에서 생활해왔다”고 설명했다. 미국 영주권자는 미국에 기간 제한없이 거주할 수 있지만 ‘외국인 거주자(a resident alien)’로 분류돼 국적은 한국인이다. 경찰은 공학부 건물인 노리스홀에서 범인 조씨가 사용한 권총 두 자루를 수거해 정밀 검사를 벌인 결과, 이들 권총이 기숙사 총격에도 사용된 것으로 밝혀져 이번 사건은 동일범의 단독범행인 것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경찰은 그러나 공동 범행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7일 오후 2시쯤 시작된 추모식에서 학생들은 대학의 상징인 주황색 셔츠를 입고 추도 식장으로 들어오면서 눈물을 글썽였고 서로 껴안고 위로하기도 했다.

이날 추모식장 행사는 ‘사상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분노와 범인에 대한 증오보다는 “가족과 대학공동체, 그리고 온 미국인들의 공동체 정신으로 슬픔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로 넘쳤다. 또 이날 저녁 8시부터 총기난사사건 현장인 노리스홀 앞 중앙교정 데릭 필드에는 수천명의 학생들이 모여 촛불집회를 벌였다.

한편 버지니아경찰당국은 이날 오후 대학구내 콘퍼런스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패어팩스 지역 센터빌에 거주하는 조씨 부모가 자살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블랙스버그 = 최형두특파원 choih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