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 공대(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초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간 교포로 밝혀지면서 이민 1.5세대가 겪고 있는 가정내 의사소통과 사회 부적응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밝혀진 조승희씨도 가족 및 친구들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내 대화 단절 = 이민 세대는 30, 40대에 보다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1세대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자란 1.5세대, 미국에서 태어난 2세대로 구별된다. 1세대는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적 정서를 가지고 있다면 2세대는 한국인이라는 자각보다는 미국인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조씨와 같은 1.5세대는 1세대처럼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와 미국에서 자라 한국적 정서보다 미국적 정서가 강하다. 이 때문에 어렸을 때 겪었던 한국적 사고방식을 계속 주입하는 부모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1세대와 달리 1.5세대는 한국어보다 영어에 익숙하다 보니 부모세대와 대화 자체가 단절되는 문제점을 낳는다.

또한 대부분 이민 1세대들이 세탁소나 식품점과 같은 저임금 자영업에 종사하는 것도 1.5세대를 고립시킨다. 일주일 내내 하루 14~16시간씩 일에 매달리다 보니 1.5세대들은 부모와 얼굴을 맞댈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또 영어 장벽과 시간부족으로 자녀들의 학교를 방문하는 부모가 적은 것도 1.5세대들의 고립을 키운다는 분석이다. 미국에서 중학생 딸을 두고 있는 김모(43)씨는 “초등학교 때는 한국어를 곧잘 하더니 중학교에 들어간 순간부터 아이가 한국어는 거의 하지 않고 영어로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며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는데 점점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져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사회 부적응 = 미국사회내 소수민족인 아시아계가 겪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은 이민 1.5세대의 사회 부적응을 낳고 있다. 인종적 구별이 크지 않던 초등학생시절과 달리 중학생으로 넘어가면 대부분 친구들이 인종별로 구별된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같은 한국인 학생들이나 아시안 학생들과 어울리다 우발적인 범죄에 말려드는 경우도 생겨난다. 뉴욕에서 한인들이 몰려사는 퀸즈 플러싱 코리아타운에는 실제로 한국인 1.5세대들의 범죄가 특히 많은 곳이다.

지난 2월 한인 청소년 3명이 행인을 상대로 금품을 빼앗고 폭행한 사건과 빈집털이를 하던 한인 청소년 2명이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현지 경찰은 코리아타운내에서 발생하는 상당수 범죄가 18세 미만의 한국계 청소년들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내 한인 밀집지역인 애넌대일에서도 한국 이민 1.5세대들이 약물이나 마약 흡입, 폭력 사건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모(52)씨는 “고등학생 아이가 학교 다녀오면 집에서 컴퓨터 오락만 하고 있어 밖에 나가 친구들과 좀 어울리라고 했더니 ‘그 아이들이랑 다니면 마약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래도 되느냐’고 반문해 할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고 부모 기대만큼 성취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상당한 압박을 받게 된다”며 “이런 압박은 어른이 될때까지 심리적 상처로 남게 된다”고 지적했다.

◆주류사회 진입하는 1.5세대 = 가정과 사회 적응이라는 이중고 속에서도 미국 사회 주류에 속속 편입하는 한인 1.5세대들도 적지 않다. 한인 1.5세대인 준최(한국명 최준희)는 지난 2005년 백인이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뉴저지주 에디슨시 시장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를 이기고 시장에 당선됐다. 한인 교포가 투표를 통해 단체장직에 오르기는 최 시장이 처음이었다.

7세때 부모를 따라 도미했던 이민 1.5세대 성김(한국명 김성용)은 현재 미국내 한국정책을 총괄지휘하는 미국무부 한국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또 6자 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한국 및 아시아 담당 수석 특별보좌관도 이민 1.5세대인 발비나 황(여·한국명 황영경)이 맡고 있다.

김석기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