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감사들의 남미 집단 외유, 원묵초등학교 소방훈련 참사, ‘여성비하’ ‘흑인비하’ 발언을 하는 공직자들….

노무현 정부 스스로는 ‘레임덕’이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최근에 잇따르는 사건들은 임기말 나사 풀린 공직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국민들은 상식이 어그러지는 현실에 실망하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뭐가 문제냐”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게 더욱 문제다. 전문가들은 합리적 절차를 무시한 부패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국민에 의한 통제와 감시로 기강 해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국민 가슴에 못질한 ‘말로만 안전점검’ = 17일 초등학교에서 소방교육을 받던 학부모 2명이 숨지는 참사는 공직사회 기강해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번 사고는 소방당국이 와이어 장치에 대한 점검 규정이나 체험교육시 안전수칙 등을 마련하지 않아 발생한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학부모들을 추락시킨 고가사다리차의 와이어는 1998년 12월 차량 출고 후 한 번도 교체되지 않았고 지난 2월 21일 정기검사를 받았지만 와이어 테스트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현장에는 바닥에 매트리스나 그물망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설치되지 않았다.

◆ 낙하산 인사들의 후안무치 = 혁신 세미나 명목으로 외유성 남미 방문에 나섰던 공공기관 감사단 중 17일 먼저 귀국한 7명은 물의를 일으킨 것에 사과했지만, 한편으로는 책임을 회피했다. 한국토지공사 최교진 감사는 “국민에게 죄송하다. 이렇게 물의를 일으켜 너무 당혹스럽다. 중요한 국가로 떠오르는 남미 국가들을 꼭 연구하고 싶어 갔지만, 결론적으로 신중치 못한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반면에 예금보험공사 이양한 감사는 “우리는 이번 출장의 단순 가담자로, 누가 일정을 결정했는지 모른 채 남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금 오는 사람들은 책임질 사람들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 품격 없는 공직자들 =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석호익 원장은 지난 16일 오전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21세기 경영인클럽 조찬회’에서 21세기 성장동력 가운데 하나로 ‘여성인력 활용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던 중 “여성이 남성보다 더 진화했다. 여성은 구멍이 하나 더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석 원장은 17일 “미래에는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이야기를 하려 했을 뿐, 여성을 비하하려는 뜻은 전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효선 경기 광명시장은 지난 14일 광명시협의회와 미국 워싱턴협의회와의 자매결연 체결식 뒤 광명시내에서 가진 오찬 자리에서 “워싱턴 DC에 갔더니 검둥이들이 득실득실하더라. 그 무서운 데서 어떻게 사냐. 나는 저녁에 무서워서 호텔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워싱턴 DC에 갔을 때 가이드가 ‘흑인들이 많으니 밤에 나가지 말라’고 주의를 줬던 게 생각나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며 “워싱턴협의회측이 워싱턴에 도착하는 대로 전화를 걸어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지난 15일 오후 세종대왕릉에서 열린 ‘세종대왕 탄신 610돌 숭모제’에 참석한 뒤 바로 옆의 효종대왕릉을 방문, 재실(齋室) 앞마당에서 지역 국회의원 등 30여명과 숯불을 피워 점심식사를 해 물의를 빚었다.

◆ 강한 정치권력이 오히려 기강해이 불러 = 정권말기에 공직기강이 해이해지는 것은 공직자들이 사적인 욕망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다음 정부가 어떻게 될까 눈치를 보면서 편하게 지내려는 사람들이 있어 정부 전체의 분위기가 새로 시작할 때와 끝나갈 때에 차이가 난다”며 “공직자들은 늘 긴장 속에 살아야 하는데 자기 이익부터 챙긴다는 건 옳지 않은 태도”라고 강조했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정치권력에 의한 통제가 강해 그것이 느슨하면 도덕적 해이가 극명해진다”며 “자치단체장, 공기업 등 권력기관들은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으므로 탈법은 아니지만 직무위반을 하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교수는 “각종 공기업 등의 임면을 내실화할 수 있도록 국민들의 감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진우·홍주의기자 jw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