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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 부추기는 극단의 시대 … 경제학 다양성이 민주주의 지켜” “시민들이 일상과 사회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학을 모르면 정치인을 뽑는 선거는 ‘인기투표’로 전락합니다. 경제학은 자신의 이익 방어뿐 아니라 후손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할 ‘필수 과목’입니다.”‘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등으로 유명한 세계적 경제학자 장하준 영국 런던대 교수가 10년 만의 신작인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부키)를 들고 방한했다. 불평등을 낳는 자유무역과 신자유주의 시대 취약한 복지 제도 등에 대한 전작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되 일반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식단’을 차린 교양서다. 마늘과 고추, 딸기와 초콜릿 등 18가지 음식을 매개로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해법을 고민한다.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코코넛을 통해 빈국(貧國)이 가난한 원인을 살피고, 복지 국가를 창시한 보수주의자 비스마르크로부터 호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식이다. “음식은 일종의 ‘미끼’입니다. 경제학에 관심 없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재밌는데도 안 읽을래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웃음)”장 교수는 지난 25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에서 열린 ‘교보문고 명강의 Big 10’ 강연에서 마늘에 얽힌 개인적 일화로 말문을 열었다. 1986년 영국 유학을 간 그가 적응에 가장 애를 먹었던 건 음식이었다. 식문화가 특히 보수적인 영국인들은 외국 음식에 배타적일 뿐 아니라 마늘 먹는 사람을 야만인 취급했다. “건국 신화에 마늘이 나오고, 1인당 연간 마늘 소비량이 7~8㎏에 이르는 한국인으로선 견디기 힘들었죠.” 그랬던 영국에 ‘음식 혁명’이 일어난 건 1990년대 중반. 영국인들은 마치 ‘우리 음식, 정말 형편없다’며 집단 각성이라도 한 듯 태도를 바꿔 아시아와 남미·동유럽 등 여러 식문화를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장 교수는 “낯선 음식을 받아들이는 건 세계적인 트렌드지만, 영국은 정직한 ‘자기 인식’을 통해 어느 순간 음식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나라”라고 설명했다.장 교수가 보기에 ‘경제학 이론’의 세계는 영국 식문화와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1970년대만 해도 경제학계에선 생산을 중시하는 고전학파, 노동가치를 중시하는 마르크스주의, 인간의 제한적 합리성에 주목한 행동주의학파 등 최소 9개 이상의 이론 분파가 건강한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 시장 논리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신(新)고전학파가 ‘경쟁자 없는 주류’로 자리 잡았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경향은 극단적 시장 논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세금과 복지 지출, 노동 여건의 바탕이 되는 경제학 이론이 다양하게 공존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집니다.”장 교수는 또 쓰촨(四川) 요리 전문점의 고추 에피소드를 통해 ‘무보수 돌봄 노동’의 가치를 역설했다. 그가 서양인 친구와 함께 방문한 식당 메뉴판엔 요리의 매운맛 정도에 따라 0∼5개의 고추가 그려져 있었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서양 친구는 고추 표시가 전혀 없는 메뉴를 주문했다. ‘고추 없는 요리’를 기대했으나 막상 테이블에 도착한 접시엔 마른 고추가 대여섯 개나 올라가 있었다. “실수 아니냐”는 항변에 직원은 “고추 표시가 없다고 고추가 전혀 안 들어간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고개를 저었다. 장 교수는 ‘없는 듯 보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고추가 사회에서 저평가 받는 돌봄 노동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경제 기여도가 매우 높은데도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탓에 국내총생산(GDP) 집계에서 무시되는 게 돌봄 노동”이라는 것이다. 장 교수는 “팬데믹을 거치며 돌봄 노동이 없으면 사회가 붕괴한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인식·제도 변화를 위해 몇 가지를 제안했다. “‘집에 있는 엄마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린 ‘워킹맘’ 표현을 지양해야 합니다. 정책적으로는 돌봄 노동에 참여한 여성이 연금 수령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유럽 일부 나라에서 시행 중인 ‘돌봄 크레디트’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이와 함께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갑각류인 새우 이야기를 통해 개발도상국이 덩치 큰 해외 라이벌과 경쟁하려면 보호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국수를 사랑하는 한국과 이탈리아 역사를 경유해 올바른 기업가 정신의 의미를 숙고한다. 모양도, 풍미도 제각각인 음식처럼 다양한 경제이슈 강연이 펼쳐지지만 모든 이야기는 ‘보다 인간적인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길로 수렴된다. “지금처럼 ‘1인 1표’의 민주사회 원칙은 축소되고, ‘1원 1표’라는 시장 논리가 확장되는 흐름에 반대합니다. 인류 역사가 지난 150년간 민주 헌법, 노예제 철폐 등을 통해 발전해왔듯 자본주의 역시 적절한 규제와 제한 속에서 ‘함께 잘사는 진수성찬’을 차릴 수 있습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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