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진보세력에 대한 정권의 탄압’으로 몰아가면서 헌재를 비판하는 주장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통진당도 잘한 것은 없지만 민주주의를 훼손한 헌재가 더 문제”라며 ‘양비론’ 성격을 띠면서 헌재의 권위와 판단을 거부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 같은 양비론은 ‘진보’가 ‘종북’과 절연하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이름만 바꾼 ‘유사 통진당’ 결성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22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부에서 이번 헌재 결정을 ‘진보 말살’이라고 주장하는데 통진당은 ‘짝퉁 진보’에 불과했다”면서 “진정한 진보는 자신이 속한 체제를 인정하고 사회질서를 존중하면서도 개혁의 속도와 범위에서 보수와 차이를 달리한다”고 말했다.

김상겸(법학) 동국대 교수는 “국가 반역 행위를 진보적 사고로 혼동하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며 “진보가 종북에 이용당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공존하며 국민들을 혼동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헌재에 흠집을 내게 하려는 의도가 있어 우려된다”면서 “헌재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기각 결정했을 때는 헌재를 찬양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헌재를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준표 경남지사도 페이스북을 통해 “종북좌파가 진보로 행세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면서 “합리적인 진보의 출연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때 민주노동당(통진당 전신)에 몸담았던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도 언론인터뷰에서 “통진당 세력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야권이 지금까지 친북 반미 민족주의라는 후진국형 진보의 틀로 단결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같은 비판과는 달리 야권에서는 이날도 통진당과 헌재를 동시에 비판하는 ‘양비론’을 이어갔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지엄하고 되돌릴 수 없다”면서도 “민주주의 기초인 정당의 자유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더 신중해야 하고 정치적이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이름만 바꾼 유사정당의 창당은 헌재의 결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꼼수”라며 “법과 제도로 이를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승배·정철순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