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委 “폭력적인 수단으로 민주헌정 전복 주장하는 정당 실제위험 초래해야 해산 가능”
헌재 “자유민주 전복입장 확인 북한과 대치 특수한 상황 고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은 세계 헌법재판기관 회의체 베니스위원회가 제시한 정당 해산 ‘가이드라인’을 상당히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헌정 사상 최초의 정당해산 결정인 데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많지 않다는 점 등에 부담을 느낀 듯 헌재는 결정문 곳곳에 베니스위원회의 정당해산 지침과 관련한 설명을 기재했다.

22일 헌재 등에 따르면 베니스위원회는 지난 2000년 정당해산 제도 관련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포함된 내용들은 국제적으로 정당해산과 관련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해석되고 있다.

베니스위원회는 보고서에서 “폭력적 수단으로 민주헌정을 전복하는 것을 주장하는 정당만이 해산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정당이 실제적으로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에만 해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다른 헌정적 수단에 의해 민주적 기본질서 수호가 어려운 예외적 상황에서 정당 해산은 보충적으로 행사돼야 하고, 과잉금지 원칙을 준수하고 일부 구성원의 돌출행위를 이유로 해서는 안 된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헌재는 19일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에서 “이석기 (전 의원) 등의 내란 관련 사건으로 대중투쟁이 전민항쟁으로 발전하고 저항권적 상황이 전개될 경우 무력행사 등 폭력을 행사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한다는 입장이 확인됐다”며 “대남혁명전략에 따라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려는 북한이라는 반국가단체와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내란 관련 사건 등을 통해 실제적 위험이 확인됐다는 취지다.

헌재는 또 “합법정당을 가장해 정당보조금을 받아 활동하면서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통진당의 고유한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해산 결정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며 “(내란 관련) 회합을 주도한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의 수장으로서의 지위 및 통진당의 옹호 및 비호 태도 등을 종합하면 이 회합은 통진당의 활동으로 귀속된다”고 밝혔다.

헌재 관계자는 “베니스위원회가 제시한 기준보다 훨씬 더 엄격한 잣대로 심리를 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베니스위원회의 요청이 있을 경우 결정문을 영문으로 번역해 제공할 방침이다. 헌재는 아직 베니스위원회 측의 공식적인 자료 요청이 없었다고 밝혔다.

베니스위원회는 공식명칭이 ‘법을 통한 민주주의를 위한 유럽위원회’로 지난 1990년 동유럽에 민주주의를 확산하기 위해 설립됐다. 유럽연합 47개국이 주축이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비유럽국가 12개국도 회원이다.

김병채 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