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 움직임과 관련, 우리 정부가 설정하고 있는 ‘레드라인(한계선)’은 자위대가 한반도를 포함해 자국영토가 아닌 해외에서 무력행사에 나서는 것을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또 군수물자 보급·지원 등 비(非)무력행사라 하더라도 자위대의 활동이 불가피하게 한반도에 직접적으로 관계되거나 영토·영공·영해 등 한국의 주권과 관련될 경우 반드시 한국 정부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내용을 담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주일미군 등 동맹국 지원의 경우라 하더라도 무기나 병력 지원이 아닌 군수물자 지원에 국한돼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일본이 행사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의 구체적인 내용은 내년 말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때 반영될 예정인 만큼 정부는 이 과정에서 ‘자위권 남용’을 막고 우리측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한·미, 한·중 공조를 강화할 방침이다.

29일 외교·안보 분야 관계자와 고위 당국자들이 전한 일본 집단적 자위권 추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명쾌하다.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은 일본 국민과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지만, 일본이 초래했던 과거 불행한 역사를 감안해 주변국들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 및 한국의 주권 행사와 관련된 자위대의 활동은 반드시 한국 정부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원칙으로 이어진다. 일본의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역할 확대와 미군 물자 지원 확대 등을 바라는 미국의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한국의 입장을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상에 따른다면 자위대는 한반도 유사시에도 주일미군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맡되, 다만 지원 범위와 규모만 확대되는 것이다.

지난 2008년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전 주미일본대사가 작성한 이른바 ‘야나이 보고서’에 따르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시나리오는 ▲미·일 공해상 훈련 중 미국 함선이 습격당해 자위대가 개입하는 경우 ▲미국(본토 혹은 미국령) 또는 미군기지로 향할 가능성이 있는 탄도미사일을 일본의 미사일방어(MD) 시스템으로 격파하는 경우 ▲유엔 평화유지활동 도중 습격당해 인근 자위대가 개입하는 경우 등으로 예시돼 있다. 이 중 한반도 인근 공해상에서 기뢰 제거 등 해상교통로 안전 확보 등을 위해 자위대와 공동 임무를 수행하던 미군 함선이 공격받을 경우 또는 북한에 의해 괌이나 오키나와(沖繩) 미군기지 등이 공격받을 경우 등이 한반도와 관련되는 상황이다.

또 이에 앞서 일본 방위전략연구회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1단계 유엔 평화유지군(PKF) 참여 동결 해제 및 무기 사용 제한 완화 ▲2단계 다국적군 후방지원법 제정 ▲3단계 무력과 일체화된 행동에 대한 해석 완화 ▲4단계 개헌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 4단계 접근법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접근법의 경우 3, 4단계가 한국과 관련될 수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정부의 대원칙은 전투력과 물리력을 동반하든 아니든 자위대가 우리 주권에 해당하는 영해나 영공에 들어올 경우 우리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구체적인 상황은 사례별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북한과의 전쟁 상황에서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주변 기뢰 제거를 위해 출동할 수 있는지, 국내의 일본 국민을 피란시키기 위해 한국으로 출동할 수 있는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