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조양현(왼쪽) 삼성서울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12일 이 병원 3층 심장외과 중환자실에서 ‘인공심장’인 좌심실 보조장치(LVAD·엘바드) 수술을 받은 환자를 살펴보면서 펠로(임상강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곽성호 기자

■ 바이털 닥터 -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교수

2001년 성형외과 꿈꾸던 인턴
대동맥박리 환자 죽음후 ‘각성’

2013년 삼성서울병원 합류후
3~4년 ‘술기 연마’ 쏟아부어

심장 대체 유일한 인공장기
엘바드로 환자에 제2의 삶
큰 수술만 1000건 이상 해내

성형외과 의사를 꿈꾸던 의대생이 있었다. 교환학생으로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성형외과 인턴십 프로그램도 들었다. 과 대표라서 의무감으로 들었던 심장혈관 흉부외과 수업은 이상할 정도로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뿐이었다. 서울 강남에서 성형외과를 크게 차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련병원에서 인턴 생활이 시작됐다. 2001년 4월 1일 흉부외과 인턴으로 처음 출근한 날, 응급질환인 대동맥박리 환자를 A병원으로 이송하란 지시를 받았다. 달리는 앰뷸런스에서 의식 없는 환자에게 앰부(수동식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조절해줬다. 앰부를 연신 짜는데 저항이 강하게 왔다. 환자 폐가 굳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환자 낯빛이 새까맣게 변했다. 환자 아들은 울부짖고 있었다. 응급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A병원 의료진은 사망선고를 내렸다. 앰뷸런스 뒷자리에 멍하니 탄 채 병원으로 돌아왔다. 근원적인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나는 정말 의사가 맞나”란 자괴감이 끊이지 않았다. 무력감도 덮쳤다. 의사 면허를 딴 지 한 달 만에 맞닥뜨린 환자가 눈앞에서 죽는지 사는지조차 몰랐다. 어느 순간 결심이 섰다. 흉부외과에 도전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덧없이 떠난 환자는 한 의사의 인생을 바꿨다. 각성한 인턴은 많은 사람을 살리는 흉부외과 의사로 거듭났다. 명의로 꼽히는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얘기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17층 심장혈관흉부외과 의국에서 만난 조 교수는 “2014년 대동맥 박리 수술을 처음 집도한 직후 벅찬 감정이 북받쳤다”며 “흉부외과 의사가 된 동기가 성취됐고, 의료진으로서 당시 환자에게 미안했던 마음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12일 이 병원 의국에서 좌심실 보조장치(LVAD·엘바드)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조 교수가 흉부외과 의사로 성장하는 과정은 쉽진 않았다. 술기(術技)를 도제식으로 배우는 흉부외과는 러닝커브(학습구간)가 길다. 전문의를 딴 후에도 최소 5년 이상 배워야 독립적인 수술이 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흉부외과를 택하는 걸 반대했다. 바이털(필수의료)을 선택하는 ‘바보’가 아직도 있냐는 말도 들었다. 조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외부 시선과 달리 원내에선 의료진들과 환자들이 어떤 경우에도 흉부외과 의사를 존중해줬다”며 “환자와 보호자, 동료들의 존경, 일에 대한 보람이 모든 힘듦을 상쇄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에 합류한 2013년부터 3~4년간 조 교수는 술기를 연마하기 위해 독하게 노력했다. 병원에서 당직과 무관하게 150일 이상 잤다. 저녁에 퇴근해도 자녀들이 잠들면 오후 10시에 병원으로 다시 출근했다.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을 살피면서 술기 연습에 매달렸다. 연구에도 매진했다. 휴가도 거의 가지 않았다. 가족들이 많이 희생했다.

노력은 성과로 입증됐다. 조 교수가 주로 수술하는 분야는 심장 이식과 인공심장, 대동맥박리 등이다. 큰 수술만 1000여건 이상 해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해 말 ‘인공심장’이라 불리는 좌심실 보조장치(LVAD·엘바드) 수술 200례를 국내 최초로 달성했다. 조 교수가 이를 집도했다.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받았으나, 몇 년 전 심부전(심장 기능 저하)으로 악화됐던 환자였다. 그는 ‘제2의 심장’을 얻은 후 일상생활을 누리고 있다.

엘바드는 인체에 삽입할 수 있는 유일한 인공장기다. 심장이식을 기다리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환자들에겐 엘바드가 사실상 마지막 희망이다. 최근 저출생·고령화 현상 탓에 심장 기증도 줄어 엘바드 중요성은 커졌다. 조 교수는 “엘바드 수술 평균 연령은 50대 중후반 정도”라며 “50대 이하 환자들은 엘바드를 심장을 이식받기 전까지 2∼3년 정도 사용하고 70대 이상 환자들은 평생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크모(ECMO·인공심폐기계) 국산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에크모는 심부전과 폐부전 환자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장치다. 하지만 대다수 에크모는 외산이다. 조 교수는 정부지원금 연구과제에 지원해 에크모 국산화 연구를 이끌고 있다. 그는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 에크모 기술의 70% 수준까지 도달했지만 90∼95% 수준까진 끌어올려야 한다”며 “최종 목표는 이들 기술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조 교수가 운용하는 팀은 3개다. 대동맥팀, 심부전팀, 에크모팀이다. 강점은 ‘다학제 진료’다. 조 교수는 “다학제 진료가 우리 병원의 심장수술 분야를 국내 1위로 만든 비결”이라며 “여러 진료과 의사들이 힘을 합쳐 ‘집단 지성’을 발휘하면 환자에게 최대 이익을 주는 치료를 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에게 환자는 목숨 같은 심장을 맡겨주는 사람이다. 이에 그는 늘 환자 곁에 서려고 노력한다. 후배들에겐 “당신이 받고 싶은 치료를 환자에게 해줘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환자는 흉부외과 의사로 살게 하는 동력이다. 조 교수는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을 살렸을 때 성취감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며 “수련기간은 상대적으로 길고 고되지만 그 이후엔 어디에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보람과 사회적 존중이 있는 곳이 흉부외과”라고 말했다.

권도경·유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