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기 기업인 증인 신청으로 ‘기업국감’이라는 신조어마저 등장하고 있는 국정감사 양상이 ‘상임위 겹치기 출연’,‘보복성 증인 채택’,‘무성의한 질의’ 등으로 얼룩지면서 기업인들의 불만도 폭발 직전이다.

16일 국회 및 재계에 따르면 도성환 홈플러스 대표는 정무위원회·산업통상자원위원회·환경노동위원회 등 3개 상임위에 증인으로 겹치기 출연해야 할 상황이다. 도 대표는 상임위별로 소비자 피해·동반성장 평가·가습기 안전사고 등과 관련해 각각 신문을 받을 예정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업의 여러 책임자가 같은 날 같은 상임위에 채택된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신종균 삼성전자 사장·백남육 삼성전자 부사장·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대표 등이 15일 정무위 증인으로 채택됐다가 권 부회장과 신 사장 대신 백 부사장이 상황을 설명하고 향후 종합감사 때 권 부회장을 부르는 것으로 조정됐다.

책임자를 잘못 부르고 심지어 전문경영인의 답변에 대한 보복성으로 총수를 증인으로 부른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허인철 이마트 대표는 15일 산업위에 참석해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대형마트 사업 조직과 관련이 없는 기업형슈퍼마켓(SSM) 사업조직인 이마트에브리데이와 관련된 의원 질의를 받고 “이마트에브리데이 대표는 따로 있어 제가 대답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답한 데다 중소기업 기술 탈취 의혹을 부인하자 중도에 퇴장 조치를 당했다.

해당 상임위 의원들은 “대화가 안된다. 귀하 대신 그룹 회장을 불러야 했다”면서 여야 합의로 정용진 부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 과정에서 여상규 새누리당 의원만이 “대표이사도 잘 모르는 일을 부회장은 더 알기가 어렵다”며 “자칫 보복성 증인 채택으로 비칠 수도 있다”며 반대 의견을 낼 정도였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11월에는 국감과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아 정식 재판에 회부돼 벌금 1500만 원을 선고 받은 바 있다.

임준성 한성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우리 회사는 자동차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대답 한마디만 한 채 국감장을 물러나와야 했다. 이날 정무위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 증인 19명 가운데 답변 시간이 1분도 채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국정감사가 힘을 과시하고 로비를 받는 권력형으로 변질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내년 경영계획을 세워야 할 중대한 시기에 주요 경영자들의 무더기 국감 소환으로 인해 기업들이 큰 차질을 빚고 있다”면서 “게다가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증인 채택 과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