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국회가 유독 약해지는 분야는 ‘정치 쇄신’이다. 여야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들은 선거 때만 되면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정치 쇄신 방안을 경쟁적으로 내놓지만 국회 입성 후에는 자연스레 망각한다.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함께 있었던 2012년에도 여야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를 치유하겠다며 앞다퉈 ‘세비 삭감’ ‘기초단체장·의회 정당공천 폐지’ 등 정치 쇄신 공약들을 내놨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셀프 개혁’하겠다며 만들었던 정치쇄신특별위원회도 기대 이하의 성과만 내놓은 채 흐지부지됐다. 더구나 정치쇄신특위의 후속기구로 국회에 설치키로 합의됐던 정치개혁특위는 구성될 기미조차 안 보인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내놨던 정치 쇄신안 중 ‘세비 30% 삭감’은 은근슬쩍 없던 일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12월 6일, 민주당은 그보다 5일 앞선 12월 1일 전체 의원들의 뜻을 모아 세비를 30%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대선을 불과 2주가량 앞두고 한 표가 급한 때였다. 그러나 대선 후 처리된 19대 국회의원의 2013년도 세비는 지난해와 똑같은 1억3796만 원이었다. 이는 18대 국회보다 20% 늘어난 금액이다. 지난 9월 30일 활동이 종료된 국회 정치쇄신특별위원회에서도 세비 삭감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론도 내놓지 못했다. 애초 4월 30일 특위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국회의원이 스스로 수당 등 세비 지급을 결정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별도 심사위원회에서 세비를 책정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회 의원의 정당 공천을 폐지하는 것도 이번 정기국회 통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양당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정당 공천이 공천헌금 비리, 지방 정치의 중앙 정치 예속화 등을 야기한다며 정치 쇄신 방안 중 하나로 ‘무(無)공천’을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공천권을 휘두를 수 있는 지방선거(2014년 6월 4일)가 불과 8개월여 앞으로 다가오자 그간 행사해온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고 버티고 있는 모양새다. 일단 민주당은 지난 7월 25일 전당원 투표를 거쳐 정당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실제 폐지될 경우 정당의 책임정치가 사라지고 지방 토호들의 전횡이 극심해질 것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지난 4월 24일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무공천을 실시한 바 있던 새누리당은 막상 당내 이견을 이유로 당론 결정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정치 쇄신’ 약속이 물 건너가며 여야가 의욕적으로 출범시켰던 정치쇄신특위도 용두사미로 끝났다. 애초 세비 삭감, 의원 면책특권·불체포특권 제한, 당원협의회 제도 개선 등 20개에 가까운 의제를 꺼내들었던 정치쇄신특위는 결국 국회의원 겸직 금지와 국회의원 평생연금 지급 중단 등 두 가지 ‘셀프 개혁안’만 내놓고 활동을 마쳤다.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사실만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