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부시(65·사진) 동북아시아 정책연구센터 소장은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프로그램을 “김 씨 왕국의 화폐(the coin of the realm)”라고 표현했다. 3대세습 체제의 사실상 왕조국가인 북한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프로그램을 통해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맞서는 군사강국임을 내세워 내부결속을 다지고, 경제적으로는 주변 국가들에 지원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반도 전문가로서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의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부시 소장은 13일 문화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북한의 3차 핵실험의 의도에 대해 분석하며 협상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이 어려워졌다고 시사했다.

―북한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체제에서 3차 핵실험에 나선 의도는 무엇인가.

“김정일 사망 후 권력을 세습한 김 제1위원장의 목표는 자신의 체제에 대한 정통성을 확립하고 김 씨 왕조를 보존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프로그램은 김 씨 왕국의 화폐나 다를 바 없다. 김 제1위원장은 3차 핵실험의 성공으로 자신을 커다란 승리자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 프로그램이 동북아시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및 3차 핵실험으로 인해 북한은 미국 본토와 일본을 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는 군사적 능력을 확보했다는 점이 입증됐다. 3차 핵실험은 미국과 일본에는 북한에 대한 그동안의 판단을 확인하는 시험과정이었다. 북한이 궁극적으로 성공을 거둔다면 동북아시아의 안정은 무너지고 다른 지역으로도 핵무기가 확산될 위험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전과는 다른 강력한 대북제재에 나설 것으로 보는가.

“일부에서는 북한의 이번 3차 핵실험에 대해 미국과 일본, 한국이 협상으로 저지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김정일보다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미국과 일본, 한국은 지난 수년 동안 북한에 대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국제사회의 경제·정치적 지원을 받을 것인지 선택을 하라’는 정책을 취해 왔다. 북한이 한쪽을 선택한 만큼 미국은 강력한 제재에 들어갈 것이다.”

―2005년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취했던 자산동결조치 같은 금융제재가 이뤄질 것으로 보는가.

“미국은 모든 제재를 검토할 것이다. 현재의 제재 수준을 확대할 여지도 있고, 이란 수준으로 강력한 금융제재에 새롭게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북한이 선택을 하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북한이 우리를 선택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제재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 공조해 북한의 3차 핵실험 저지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는데.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새로 출범한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체제의 리더십을 ‘뜨거운 의자(hot seat)’에 올려놓았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체제의 대북 전략은 다중적 목적에서 움직였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다자제재의 충격을 제한하면서 북한 정권의 안정을 위해 경제적 지원을 펼쳤다. 김 제1위원장을 비롯한 북한의 최고지도부는 중국이 소리만 지를 뿐 실제로 제재를 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쪽에 베팅을 했다.”

―남북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는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너무 극단적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박 당선인은 한반도 신뢰 회복 프로세스를 제안했지만 앞으로 방어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 = 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