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11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민심 이반 현상이 곳곳에서 노출되는 가운데 당·정·청 간 균형의 추가 한나라당 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복지 등 서민 예산 확대, 부자 증세 등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 근간을 뒤흔드는 한나라당의 공격적인 정책에 청와대와 정부가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모습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28일 “어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한나라당에서 요구한 서민예산 증액 부분과 함께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 문제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같이 밝힌 뒤 “내일 쇄신연찬회가 끝난 후 당·정·청이 다시 만나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조정작업을 이번주 내에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 대표가 이 대통령과의 면담 내용과 관련, “서민 민생 예산은 재정건전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예산을 재조정하기로 논의했다. 시대변화에 맞춰 최고구간 신설도 필요하다고 의논했다”고 말했다고 김기현 당 대변인이 전했다. 홍 대표의 한 측근은 “복지 등 서민예산을 1조원 이상 올리거나 소득세 최고구간을 신설해 최고 세율도 늘리는 이른바 ‘부자 증세’ 등의 문제는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대통령도 서민예산 증액에는 사실상 동의했고 부자 증세는 당·정·청 논의를 통해 결정한다고 합의를 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도 “서민예산의 대폭 증액 부분은 여권 내 이견이 없다고 보면 된다”면서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부자 증세에 대해선 황 원내대표는 “아직 이견이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29일 쇄신 연찬회를 지켜본 뒤 이번주 중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열어 서민예산 증액은 물론 현행 35%인 소득세 최고 세율을 38∼40%로 올리는 안도 논의할 계획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소득세 구간을 하나 더 신설할 것”이라며 “정부가 안 해도 우리가 한다”고 의지를 보였다. 그는 “현행 소득세 최고구간인 8800만원은 2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때 대상자가 1만명이었는데 지금은 28만명이 넘는다”고 신설 당위성을 설명했다. 현재 기획재정부는 부자 증세에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홍 대표의 의지가 매우 확고해 사실상 한나라당 안이 관철될 것이라는 분석이 강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선거는 청와대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치르는 것”이라며 “결국 청와대와 정부도 백기를 들지 않을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만용기자 my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