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 왔다.”

아이티 현지에 거주했던 한국인들이 아비규환의 지진 현장을 빠져나와 국경이 인접한 도미니카공화국으로 탈출했다. 이들 대부분은 사업 또는 업무상 아이티와 도미니카를 오고갔던 사람들로 처참한 지진 현장에서 빠져나와 버스로 5~6시간을 달려 도미니카로 빠져나오고 있다.

이들은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돼 e메일로 가족들에게 생존사실을 알리고 참사현장의 소식을 간략히 전하고 있다.

도미니카 한인회의 박길선 회장은 아이티 지진 발생 이튿날인 14일(현지시간 13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아이티에서 발전기 공사, 섬유 제조 분야 등에서 일하는 한인들 59명이 모두 무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들은 전부 현지에서 철수해 버스 등 가능한 교통편을 이용해 도미니카로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도미니카에서 거주하면서 아이티에 나가 일하는 한국인 숫자가 공식적으로만 59명이며 집계되지 않은 인원이 더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업무상 아이티에 부인과 함께 나가있던 최상균(32)씨는 현지시간으로 오후 11시쯤 도미니카에 도착했다. 최씨는 지진 당시 피해가 컸던 현장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도미니카에 있는 가족들은 지진으로 아이티 통신이 불통돼 현지에 있는 지인 e메일을 통해 최씨의 생사를 확인하면서 현지 참상을 전했다.

규모 7.0의 대지진이 발생한 아이티 참사현장은 이틀째 아비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CNN 등 외신들은 전했다. 병원에는 시신이 계속 들어오고 있으나 열악한 시설과 구호 장비 및 인원 부족으로 거의 방치되다시피하고 있다. 상처를 입고 먼지를 뒤집어쓴 생존자들은 건물 추가 붕괴를 우려해 거리에서 밤을 새우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티 구세군의 밥 포프는 “수천명의 사람이 피를 흘리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도움을 호소했다. 차창 밖으로는 건물들이 팬케이크처럼 납작하게 무너지고 있었다”며 끔찍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카렐 페드로라는 한 남성은 “많은 사람이 예수가 오고 있다고, 신을 믿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기도했다”며 “종말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아동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의 이안 로저스는 “들리는 것이라고는 이웃의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뿐이었다”며 “사방에서 건물에 깔린 가족을 찾으려는 비명과 신음이 쏟아져 나오는 등 공포가 계속되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조속한 도움을 호소했다.

심은정기자 fearles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