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살아만 있어다오…” 17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뚠눈으로 밤을 지새운 여객선 진도 침몰 참사 실종자 가족이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생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진도 = 심만수 기자 panfocus@munhwa.com

“아이들이 죽을 때를 기다렸다 시체만 건지겠다는 것이냐. 아이들이 죽으면 우리도 이 자리에 기름을 붓고 불질러서 죽겠다.”

여객선 진도 침몰 참사의 실종자 가족 300여 명은 17일 학부모대책본부가 마련된 사고 현장 인근 전남 진도군 진도읍 실내체육관과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 모여 구조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며 사고 이틀째 아침을 맞았다.

밤새 실종된 아들과 딸의 무사귀환을 간절하게 바라던 학부모들은 사고 발생 꼬박 하루가 지나도록 자녀들의 생사가 확인조차 되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자녀들의 이름을 부르다 실신하기도 했다. 애타는 마음을 가누지 못한 한 학부모가 밤새 뒤척이다 맨발로 실내체육관 밖으로 뛰어나가 “부탁드립니다. 내 자식을 살려주세요”라며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려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밤새 잠 한 숨 못자고 물 한 모금 제대로 넘기지 못한 학부모들 중 10여 명은 끝내 탈진해 사고대책본부 한쪽에 마련된 응급진료소에 몸져누웠다. 한편 실내체육관에서 아들 소식을 기다리다 진도한국병원으로 이송된 보호자 가족들도 있었다. 단원고 2학년 4반 강모 군의 어머니 조모(47) 씨의 경우 아들이 생존자 명단에 있다는 말을 듣고 안도했으나 수소문 결과 실종자로 확인되면서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오전 9시쯤 체육관에 있던 한 부모가 팽목항에 있는 학부모로부터 “민간 잠수부에게서 아이들이 살아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전화를 받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오전 9시 10분 추가 사망자가 확인되고 “사망자는 남학생”이라는 해경 관계자의 발표가 나오자 여학생 학부모 측과 남학생 학부모 측의 표정은 안도와 불안으로 엇갈렸다.

일부 학부모들은 사고대책본부를 찾아가 “구조작업이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등 격하게 항의했다. 답답한 심정을 참지 못한 학부모들은 “사고 발생 20시간이 지나도록 대책만 마련하지 말고 나가서 구조를 빨리 하라”, “배에 산소를 주입하라”, “사고 현장 지휘 체계를 똑바로 갖춰라”며 소리를 질렀다. 일부 흥분한 학부모들은 항의하는 도중 집기를 부수는 것으로 울분을 대신하기도 했다. 공황 상태에 빠진 한 학부모는 체육관 단상 앞으로 뛰쳐나가 “2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바다에 빠져 있는데 달랑 열댓 명으로 구조하겠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며 울부짖었다.

한편 생존자들은 사고 당시 선장과 승무원들의 잘못된 대응과 안내가 사고를 키웠다고 증언했다. 생존자 김모 씨는 “이미 배가 40도 가까이 기울고 물이 차기 시작했을 때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제자리에만 있으라’는 방송만 없었어도 더 많은 사람들이 배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며 “많은 사람들이 구명조끼를 나눠 입는 데에도 시간이 촉박했다”고 했다. 안내 방송을 맡은 승무원 강모 씨는 “이상징후가 이미 발견된 9시쯤에는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지시를 받지 못했고, 20∼30분이 지난 뒤에야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을 했다”고 했다.

일부 승무원들은 승객보다 한 시간 전에 이미 이상을 감지했다고 증언했다. 보일러실에 있던 승무원 전모 씨는 “오전 7시 40분쯤 업무를 마치고 업무 일지를 쓰던 중 배가 갑자기 기울었다”고 말했다. 또 송모(20) 씨는 “승객 배식이 한창 이뤄지고 있을 때부터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고 말해 8시 전에 이미 이상징후가 포착됐음을 시사했다.

진도 = 정유진·이근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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