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강직한 성품의 정홍원 전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장을 총리로 지명한 것은 ‘법과 원칙’이 국정운영의 근간이 될 것임을 거듭 표방한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 지명자는 검사 시절에 특수검사로 명성을 날린 데다 바른말을 잘하는 인물로 알려졌고,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장 때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이번 인선은 박 당선인의 법조인 선호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것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정 총리 지명자는 일단 낙마한 김용준 전 총리지명자와 인물 콘셉트가 겹치는 부분이 많다. 박 당선인이 김 전 총리 지명자의 낙마 이후에도 총리 콘셉트를 바꾸지 않고 인사검증을 고려해 ‘베스트(best)보다는 라이트(right)’한 인물을 찾아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는 인사 콘셉트가 바뀔 경우 후속 장관 인선 등에도 줄줄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박 당선인은 우리 사회의 각종 잘못된 관행과 병폐는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은 데서 비롯된 만큼 법치와 원칙을 바로 세움으로써 신뢰라는 사회적 자산을 만들어내면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정 총리 지명자가 지난해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공직자후자추천위원장을 맡으면서 현실정치를 잠깐 경험한 바 있지만 ‘책임총리’를 구현할 만큼 정치력이 검증된 인물은 아니다. 이에 따라 정 총리 지명자가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며 대통령을 보좌하기보다는 ‘대통령-경제부총리-각 부 장관 및 컨트롤타워’로 이어지는 권력의 3각축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관리형 총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 당선인의 한 측근은 최근 사석에서 “대통령이 국정을 장악하는 데 총리까지 강력한 인물이 필요하냐”며 “경제부총리가 경제 쪽을 전담하고 총리는 전체적인 정책조정을 원활히 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총리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보다는 각 부 장관들이 자신들의 권한을 적절하게 행사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행정부 수장으로서 이들을 잘 조정하는 역할만 하면 된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경제·복지·미래·안보 등 부처를 4개팀으로 나눠 총리가 조율·총괄하게 한다는 것이다.

정 총리 지명자는 설 연휴 기간 박 당선인과 국무위원 인선에 관한 제청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 지명자와 설 연휴 이후 선임될 장관들은 똑같이 법적으로 최장 20일의 기간이 보장된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국회는 인사청문 요청서가 넘어오면 청문특위를 꾸리고 여야 협상을 통해 일정을 조율한 후 청문회를 실시하고 경과보고서를 작성, 채택해야 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이 모든 과정을 최대한 빨리 할 경우 1주일 정도가 걸린다.

새누리당은 박 당선인의 취임식에 맞춰 새 정부를 정상적으로 출범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박 당선인이 취임한 이후에 현 정부의 장관들을 빌려 써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정 총리 지명자는 지난해 1월 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장에 선임된 뒤 박 당선인과의 인연을 묻는 언론의 질문에 “나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며 나는 (박 비대위원장의) 회전문 안에 있지 않았다”면서 “그동안 여러 각도에서 나를 알아봤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떨어져 있어서 신선한 시각으로 (정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