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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서로 상대당의 공약을 베끼는 ‘판박이’ 공약 탓에 4·11 국회의원 총선거가 정책선거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야 하는 분위기다.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민주당)이 내놓은 공약들이 비슷한 내용으로 넘쳐나고, 여야의 대립각이 서는 정책은 실종됐다. ‘표’를 의식한 여야의 판박이 공약으로 인해 자칫 정치 공방만 과열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27일 문화일보가 여야의 정책자료집을 분석한 결과 경제민주화, 복지 정책 등 여야가 강조하는 핵심 정책들이 거의 흡사했다. 맞춤형 복지(새누리당), 보편적 복지(민주당) 등 일부 표현만 다를 뿐이었다.

보육 정책은 여야가 경쟁하듯 복지 수준을 높여가고 있고, 사병 월급 인상·이동통신요금 부담 인하 등 인기를 끌 만한 공약들 모두 비슷한 이름으로 양쪽 정책자료집에 모두 자리 잡고 있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카드수수료 인하’ 등 경제적으로 민감한 이슈도 양쪽 모두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는 ‘무상급식’ 이후 ‘복지’가 화두가 되며 새누리당이 민주당의 공약을 상당 부분 받아들인 데 따른 것이다. 물론 민주당도 시민사회와 진보정당이 주장해 오던 공약을 많이 흡수했다. 결국 10여년 만에 정치권의 총선 공약이 상당히 ‘좌클릭’한 것이다.

반면 여야 정책자료집에서 한미 FTA 관련 후속 대책들은 사라졌다. 새누리당은 농어촌 공약에 ‘확실한 FTA 보완 대책 집행과 농어업피해예방 만전’이라고 집어넣어 놓고 정책자료집 마지막 페이지에 ‘경제영토 확장’이란 두루뭉술한 표현만 넣어놓았다.

민주당은 ‘불통과 독선의 MB역주행 4년 심판’이란 공약 아래 ‘한미 FTA 재협상 관철’ 한 줄을 슬쩍 끼워 넣었다. 새누리당은 한미 FTA로 피해 보는 계층의 표가 떨어질까 우려하고, 민주당은 개방정책에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중산층 표를 의식한 행태다.

이에 대해 신율(정치외교학) 명지대 교수는 “정책이 쟁점으로 치러졌던 선거가 많지는 않지만 이번 총선은 대선을 앞두고 있어 좀 더 심한 것 같다”고 밝혔다.

박효종(국민윤리교육학) 서울대 교수는 “정책 선거가 실종되면 결국 정략적·감정적 차원에서 다툴 수밖에 없다”며 “색깔론이나 역색깔론, 말꼬리잡기 등 생산성 없는 다툼에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만 커지고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으로 흐를 가능성도 농후하다”고 비판했다.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은 “여야 모두 복지에 치중하기 때문에 나온 현상”이라며 “복지만 클로즈업되면 자칫 재원의 합리적 운용이나 성장 동력 마련 등 경제의 근간을 흔들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민병기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