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어두운 국정원장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20일 오전 심각한 표정으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에 출석하고 있다. 임정현기자 theos@munhwa.com

정보기관이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고도 ‘김정일 사망’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을 정도로 북한 내부 정보에 어두운 이유는 정보수집 방법에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 정부에서 ‘햇볕정책’을 시행하면서 사람을 이용하는 ‘휴민트’(HUMINT : human intelligence) 정보망이 붕괴된 이후 첨단 전자장비를 통한 정보를 수집하는 ‘시진트’(SIGINT : signal intelligence)에 의존하면서 ‘평양 소식’에 깜깜해졌다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물론 정부 당국자들도 북한 지도부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로 ‘휴민트’ 붕괴를 꼽는다.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인적 정보망을 구축해 왔으나 ‘햇볕정책’ 추진 과정에서 와해 수준에 도달했고, 현 정부 들어서도 제대로 재건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0일 “위성과 감청장비로는 비무장지대 주변의 군사적 동향을 파악할 수 있지만 평양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없다”며 “북한 지도부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접근할 수 있는 인적 정보망 재건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의 정보망과 최첨단 장비를 갖춘 미국이 이번 ‘김정일 사망’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시진트’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때마다 정부는 위성을 통해 전용열차의 국경 통과를 확인하면서도 내부 탑승자를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부가 최근 미국과의 정보 공유를 확대하고 있으나 이는 대부분 ‘시진트’로 수집된 정보여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현 정부 들어 ‘휴민트’ 재건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보 당국은 북·중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탈북자와 상공인들을 통한 정보망을 상당 부분 복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기서 수집된 정보는 대부분 북한 주민들의 생활 또는 지방 간부들의 행태와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북한의 핵심 지도부의 동향을 파악하기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도발 이후 대북 교류·접촉이 차단되면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틈이 없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통로를 통한 북한과의 왕래가 있어야 정보 수집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지원이 금지된 상태에서도 문화·학술교류와 인도적 지원을 꾸준히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박영출기자 ev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