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로런스 서머스(58) 전 미국 재무장관이 15일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후보에서 스스로 중도하차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벤 버냉키 현 의장 후임에는 재닛 옐런(67) FRB 부의장이 1순위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어 FRB 1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FRB 수장에 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비둘기파인 옐런 부의장은 그 동안 FRB 내부에서 양적완화 정책을 주도했던 만큼 출구전략도 금융시장의 충격을 줄이는 방식으로 한층 유연해질 전망이다.

이날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통화 이후에 백악관으로 보낸 FRB 의장 후보 포기 서한에서 “마지못해(reluctantly) 결정했다”는 표현을 썼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그를 FRB 차기 의장에 지명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상당히 구체적 의사를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99∼2001년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고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도 초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맡으면서 오바마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었다.

하지만 의회의 일부 진보적 성향의 의원들은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독선적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최근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경제학자 350명은 “차기 FRB 의장으로 서머스는 안 된다”면서 옐런 부의장을 추천하는 서한을 백악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또 그는 하버드대 총장 재직 시 “여성은 선천적으로 남성보다 수학과 과학을 못 한다”는 여성 비하 발언으로 여성계와 시민단체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의회 인준의 벽을 넘으려면 먼저 상원 은행위원회(정원 22명)에서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고 본회의 인준 표결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의 지명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은행위 내부의 민주당 의원들만 12명 중에서 4명에 달했다. 지명을 위해서는 10명의 공화당 의원 중 3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공화당 내부에서도 비토 분위기가 심해져 결국 그는 중도하차를 택했다.

버냉키 의장의 후임자로 유력한 옐런 FRB 부의장은 1994∼1997년 클린턴 전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내고 2004∼2010년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버냉키 의장과 함께 양적완화 정책을 주도한 대표적인 연방준비은행 내 비둘기파로 교과서적인 경제 예측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 내부에서는 위기극복 경험이 없고, 경제사령탑으로서의 결단력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기류도 흐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워싱턴 = 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