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대부분은 ‘대기업’이라는 하나의 타깃을 정해놓고 집중적으로 제동을 거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떼몰이식 법안상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추락은 물론 국회에 대한 신뢰까지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최근 여야 할 것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쏟아내고 있는 것과 관련해, 시민단체와 학계 전문가들은 국회의 입법권 남용에 일제히 우려를 표시하고 나섰다.

김영훈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은 18일 “입법안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것처럼 행위 이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다”면서 “하지만 최근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은 대기업이라는 공격 대상을 설정한 후 대동소이한 내용의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하는 등 입법의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 다른 의원들도 다 하니 나도 법안 한번 만들어보자는 식으로 무임승차하듯 법안을 만들다 보면 결과적으로 국회 입법활동에 대한 신뢰까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경제민주화’라는 트렌드에 합세하듯 무리하게 법안을 내다보면, 자칫 국내 경제시스템의 장점까지 망가뜨리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 실장은 “경제민주화라는 미명하에 중구난방식으로 법안 경쟁을 하다 보면 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장점까지 일순간에 망가뜨릴 수 있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경영활동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내영(정치학) 고려대 교수는 “의원들의 입법 자체를 싸잡아 남용이라고 말하긴 힘들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경제민주화 등 특정 현안에 대해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법안이 몰리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법안 통과에 대한 노력보다는 ‘내가 법을 몇 개 만들었네’ 식으로 생색만 내다 보니 매년 엄청나게 많은 법안들이 폐기되고 있다며 국회의 고질적인 입법권 남용 문제를 강하게 질책했다.

정인교(경제학) 인하대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법적 거래관행은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엄격히 적용하면 충분하다”면서 “징벌적 손해배상 같은 법안은 특히 기업 투자에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의원들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일하는 척’할 수 있는 법안에는 집착하면서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에 따른 국회의 대체 법안 마련 등 정작 국회 입법이 절실한 것에는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는 국회의 입법권 남용에 대한 대안으로 공신력 있는 입법활동 평가기구 설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정희(정치학) 한국외대 교수는 “자구(字句) 몇 개만 바꿔서 개정 법안을 발의하고 이를 실적처럼 여기는 병폐 문화가 입법권 남용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법안의 ‘양’보다는 ‘질’을 가지고 의정활동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발의한 법안이 어떤 가치 있는 내용을 담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어떤 효용성을 갖는지 등 법안의 가치를 따질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 평가하는 입법활동 평가기구의 구성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일련의 비판에 대해 김민전(정치외교학) 경희대 교수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기 위해 여러 아이디어를 내는 활동이 바로 법안상정”이라며 “법안이 통과된 것도 하나 없는데 국회의 이런 활동을 입법권 남용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반박했다.

현일훈 기자 o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