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최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등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이 ‘대기업 옥죄기’ 논란에 휩싸이며 국회의 입법권 남용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입법은 국회의원의 고유권한이지만, 의원들이 국가 이익보다는 단기적 성과에 집착해 ‘하지 말아야 할 입법’에 열을 올린다는 지적이다. 입법권 남용의 유형은 ‘분위기 편승, 정의 과시형’ ‘아군 보호형’ ‘지역 민원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분위기가 이러니…, 정의니까… 무조건 따르라”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과잉입법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지난 18대 대선부터 이어진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고 이를 정권 초반 추진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관련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처벌 강화 내용을 담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무려 13명의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발의했다.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공동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대기업 계열사 간의 정상적 거래까지 위법으로 만들 소지가 있고 무죄 입증 책임을 기업에 지워 과잉 규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결같이 부당 내부거래 금지와 편법 증여 방지 등 법 원래의 취지를 넘어서 기업의 정상적 활동마저 위축시킬 수 있는 ‘독소’를 내포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하는 하도급 거래 공정법안도 비슷한 내용으로 13명이나 발의, 포퓰리즘적 입법으로 자리잡았다. 또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택시법) 개정안의 경우 영세업자와 택시기사 보호라는 ‘대의’ 아래 파급효과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아군은 확실히 보호하자”

과잉 입법의 사례는 여야 공통의 이익과 관련이 있는 사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8대 국회에서는 청목회 사건에 연루된 국회의원에게 면죄부를 주는 내용이 포함된 소위 ‘청목회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이 법사위원회에서 통과됐다.

이 법은 정치자금 공영제와 기부내역 공개확대 등 제도 개선책을 담고 있었지만 ‘자기식구 챙기기’라는 비난을 받으며 본회의에서는 통과되지 못했다. 2011년 당선인과 선거사무장 등의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무효 규정을 크게 완화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됐지만 역시 비판여론에 시달리며 국회 통과는 무산됐다.

◆“지역 민원이 최우선”

표심 잡기에 민감한 의원들은 지역 민원이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특별법 등을 동원해 입법에 열을 올린다. 그중 상당수는 기본적인 자금 충당 계획, 논리성도 갖추지 못해 함량 미달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4·11 총선을 앞두고 폐기처분됐던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천문학적인 공항 이전 비용에 대한 고려도 없었고 책임은 국방부에 떠넘긴 무책임한 법안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부도 공공건설 임대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은 최대 14조 원 규모의 부도 책임을 정부에 전가시키는 내용이 골자다.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도로법 개정안도 중앙정부의 비용부담을 크게 늘리는 법안이다.

장영수(법학) 고려대 교수는 “국회의원은 지역주민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로서의 지위를 우선해야 한다”며 “의원의 법안을 입법과정에서 사전적으로 걸러내는 입법평가가 강화돼야 입법권 남용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화종 기자 hiromat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