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기자들 사이로…’ 박근혜(앞줄 뒷모습)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당사에서 과거사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한 뒤 취재기자들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선거 후보가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을 ‘헌법 가치 훼손’이라는 강도 높은 표현까지 사용하며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에 대한 역사관을 수정한 것은 자신의 아킬레스건이자 대선 초반 변수인 과거사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강한 의지의 발로로 해석된다.

대선주자로서의 첫 공식사과이자 지난 10일 자신의 ‘인혁당 두 개 판결’ 발언 이후 2주일 만의 이날 기자회견은 최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에게 지지율이 역전되고 ‘정권 재창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위기감을 박 후보 스스로가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로도 평가된다.

박 후보는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 가치라고 믿는다”면서 “그런 점에서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과거사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기겠다”던 기존 입장을 전면 수정한 것이다. 기존에 박정희 시대의 공과(功過)를 병렬적으로 나열했던 것과는 달리 ‘과’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는 대선후보로서 과거사에 대해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박 후보의 한 측근 의원은 “과거사 논란을 털고 가려는 박 후보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소개했다. 박 후보는 “자녀가 부모를 평가한다는 것, 더구나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리라 믿는다”는 표현에서 고심의 흔적을 드러냈다. 박 후보의 한 측근이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한’ 정도에 비유되는 힘든 결정이었다고 말한 것처럼 그의 권력의지도 그대로 표현됐다. 박 후보는 이날 자신의 발언이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제18대 대통령 후보”의 자격이라고 회견 서두에서 강조했다. 이날 쥐색 정장 차림의 박 후보는 시종일관 결연했으며 긴장한 듯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박 후보는 이 같은 자신의 역사관 수정 발언이 진정성 논란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탓인지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일종의 박정희정권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인 셈이다. 박 후보는 “저는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해 과거사를 비롯한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의 캐치프레이즈인 국민대통합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국민대통합 100% 대한민국, 국민행복은 저의 가장 큰 비전”이라며 “100% 대한민국은 1960~1970년대 인권침해로 고통을 받았고 현재도 그 아픔이 아물지 않은 분이 저와 동참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장은 힘들겠지만 과거의 아픔을 가진 분을 만나고 더 이상 상처로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소 상기된 표정의 박 후보는 당사를 나서며 “마지막 사과라고 보면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 말씀 드린 내용에 모든 게 함축돼 있고 앞으로 실천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제 진심을 받아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