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총선 D-9인 31일, 선거전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이번 총선의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당의 ‘국정안정론’과 야권의 ‘견제론’을 뒷받침할 대형 이슈가 좀처럼 부상되는 않는 가운데 선거구별로 지역이슈가 부상하는 실리·실용주의 선거 양상이 분명해지고 있다. 또 지난해 대선 이후 4개월 만에 총선이 치러지는 만큼 ‘대선 같은 총선’이 될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현 정부 심판론이 대두되면서 ‘총선 같은 총선’이 진행되고 있으며, 부동층이 급증하는 가운데 전통지지층을 중심으로 주요 정당의 지지층 결집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노무현심판론’대신 이명박 정부 심판론 =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번 총선은 대선과 같은 총선이 치러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며 “인수위의 어설픈 정책 남발과 내각 인선 파동을 겪으면서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를 새정부로 보지 않고 아주 오래된 정부로 보는 ‘피로감’을 갖게 됐다”고 평했다. 그는 “총선은 원래 현 집권세력에 대한 심판론과 견제론 성격을 갖고 있다”며 “안정론보다 견제론이 갈수록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안정론은 36%인 반면 견제론은 49%로 나타났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38%로 40% 이하로 떨어졌다. 또 지난 대선의 최대 화두였던 노무현 정부 심판론이 싹 사라진 것도 이번 총선의 특징으로 보인다.

◆ 실용·실리주의 선거 = 휴일인 30일 서울 신도림역에서 만난 회사원 조도익(40)씨는 “이번 총선에선 당을 보고 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김한길 후보를 찍었다는 그는 “우리 지역은 재개발이 거의 끝났지만, 학원 등 교육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아이들이 옆 동네인 목동의 학원을 다닌다”며 “교육 인프라 확충을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를 찍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선 교육, 환경, 지역개발, 교통, 복지 등 유권자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지역공약들이 선거 판세를 좌우하는 실용·실리주의 선거 양상이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총선은 지역개발의 적임자를 자임하는 후보들의 ‘인물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 대형이슈 ‘미풍’= 한반도 대운하, 북한 변수 등 기존 총선판을 달궜던 대형이슈들이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번 총선의 특징이다. 통합민주당 등 야권은 “한반도 대운하 추진=이명박 정부 독재”라며 이슈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총선용 정략적 공세”라고 이슈화를 회피하는 측면도 있지만, 대선이라는 큰 선거를 치른 후 4개월 만에 총선이 치러지는 만큼 폭발력이 큰 이슈가 아니면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대선 증후군’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부동층 증가 =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연구실장은 “선거 쟁점이 없고 관심이 낮을 때 부동층이 늘어나는데, 이번이 딱 그런 선거”라고 말했다. 그는 “정당별 대결구도가 형성되지 않다 보니, 인물 중심 선거가 되면서 부동층이 늘어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한나라당지지층에서 떨어져나온 경우도,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워낙 와해된 탓에 민주당 지지층에 흡수되지 않고 부동층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 글로벌리서치가 지난 25~26일 전국 유권자 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지 정당을 묻는 질문에 31.6%가 응답하지 않았다.

◆ 전통 지지층은 은밀히 결집 = 부동층이 증가하는 가운데 주요 정당의 지지층은 역으로 결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100석 미달’과 한나라당의 ‘과반 위기론’ 등 각 당의 불안감 고조전략이 전통 지지층에서 먹혀 들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교수는 “로열티가 약한 지지층은 정당에 대한 실망감으로 등을 돌리고 있지만, 전통 지지층의 경우 불안심리로 공고히 결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민주당·한나라당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지층 결집이 눈에 보인다”고 했다.

유병권·김성훈기자 yb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