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로 4·9 국회의원 총선거가 9일 앞으로 다가오고 공식 선거운동도 중반전에 접어들면서 각 당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위기론’을 설파하고 있다. 통합민주당은 “서울에서 이기는 곳이 2곳 밖에 안된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한나라당은 “국회 과반의석(150석) 확보가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한다. 전혀 근거 없는 주장으로 치부할 수는 없지만, 이같은 각 당의 읍소는 위기론 확산을 통해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을 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당 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서울 등 수도권 111개 지역구에서 우리당 후보 우세지역이 2∼3곳 밖에 안되는 것으로 나왔다”며 “대단히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상황이 이런데도 한나라당은 엄살을 피우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한나라당이 정말 180석을 얻는다”면서 ‘위기론’을 이어갔다.

그는 “지금도 정부여당이 비밀리에 한반도대운하를 추진하고 있는데 총선 결과가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무소불위 권력이 어떤 식의 개헌을 할지, 어떤 식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할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선숙 민주당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도 이날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한나라당은 ‘부자 몸조심하는 격’이지만 우리는 엄살부릴 힘도 없다”면서 “여당 지지층의 결집이 이뤄지면서 수도권의 우리 후보들이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 담양·곡성·구례 선거구에 출마한 김효석 원내대표가 이날부터 한명숙(경기 고양일산동), 백재현(경기 광명갑), 김희철(서울 관악을), 김성순(서울 송파병), 임종석(서울 성동을) 후보 등 수도권 지원 유세에 나선 것도 이같은 위기감을 반영한다.

‘위기론’을 펴기는 한나라당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공천 탈락 충격으로 2선으로 물러났던 박희태 의원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것도 ‘친박연대’ 및 무소속 돌풍 가능성 등 한나라당을 둘러싼 위기감과 무관치 않다. 박 의원은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견제라는 것은 국회가 존재하는 자체가 견제”라며 야권의 견제론을 일축하고 “과반의석을 야당에 주어야만 견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렇게 되면 국정의 혼란과 마비, 충돌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강재섭 대표도 영남 지역 유세에 나서 ‘위기론’ 설파에 앞장섰다. 그는 30일 경남 양산 및 통영·고성 지원 유세에서 “이명박 큰 머슴을 뽑아놓고, 작은 머슴(한나라당)이 과반수가 안되면 정부가 일을 잘 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창원 지원유세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작은 정부 만들려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하려 했으나 국회의원 숫자가 모자라 통과시키지 못했다”며 “이 대통령이 일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도 한나라당 후보를 뽑아달라”고 말했다.

권은중·오남석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