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원내대표. AFP 연합뉴스

프랑스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이 정치·이념적 동지로 여겨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RN의 대선 후보이자 대표적 극우 인사인 마린 르펜 하원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를 전면 중단한 미국의 결정에 대해 일간 르피가로에 "잔인한 결정이다. 비난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이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이는 매우 가혹한 조치"라고 거듭 지적했다. 강력한 주권 옹호론자인 르펜 대표는 "미국이 더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면서도 "우크라이나가 대책을 마련할 합리적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은 매우 비판받을 만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르펜 대표의 그간 평가를 고려하면 뜻밖의 언급이다. 그는 지난달 초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유럽의회 내 극우 성향 정치그룹 ‘유럽을 위한 애국자’가 대대적인 집회를 열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을 ‘동지’로 지칭하며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크게 환영하기도 했다. 당시 르펜 대표는 "지금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봐야 한다. 밀레이(아르헨티나 대통령), 트럼프, 오르반, 멜로니(이탈리아 총리), 오스트리아의 우리 동지나 우리가 선두다"라며 "일종의 르네상스를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이 파국으로 끝난 뒤 유럽 정치권에선 젤렌스키 대통령을 두둔했지만 르펜 대표는 입을 굳게 닫으며 논평을 피했었다.

르펜 대표의 태도 변화는 2027년 프랑스 대선을 노린 정치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측근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급진적인 외교·군사 정책이 향후 르펜 대표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다고 피가로는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동조했다가는 극단적 이미지만 강화돼 중도층 공략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계산했다는 것이다. 르펜 대표의 한 측근은 피가로에 "프랑스에는 국제 민족주의를 꿈꾸는 극우 세력이 있는데 우리는 아니다"라며 상대적 합리성을 강조했다.

이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