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대법관 13명이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청사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법 위반 관련 상고심 선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병역이행 강제·처벌 하는건 양심의 자유 과도하게 제한” vs “양심은 객관적 사정 아니다… 現대체복무 없이 면제 불공평”

대법원이 1일 종교적 신념 등 ‘양심’이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포함된다며 종교·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해 파장이 예상된다. 그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유죄 선고는 1968년 7월 확립된 판례가 바탕이 됐다. 2004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다시 이 문제를 들여다봤을 때도 기존 판례를 인정한 바 있으나 14년 만에 대법원은 판단을 달리했다.

◇양심은 거부의 정당사유 =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날 밝힌 원심 파기환송의 취지는 양심이 병역법 88조 1항이 규정한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특히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병역이행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형사 처벌을 가하는 것은 소수자를 관용하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88조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게 대법원 다수 의견”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병역 불이행에 다른 어떠한 제재라도 감수하고서 병역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면서 “집총 등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이행을 강제하고 처벌하는 건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헌재가 처벌 규정인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기 때문에 이미 유죄가 확정돼 형을 마쳤거나 수형 중인 사람들은 재심이나 보상 청구를 하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반대 의견은 = 양심이 입대 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지만 반대 의견도 있었다. 특히 박상옥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병역법 88조1항의 정당한 사유는 질병, 재난 등과 같이 일방적이고 객관적인 사정에 한정돼야 한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이 개인적, 주관적 신념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 대법관은 “병역거부와 관련된 진정한 양심의 존재 여부를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이기택 대법관은 “종교 신도가 늘어날수록 입대 군인이 줄어들고 군대가 결국 없어지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할 국가도 없어진다”면서 “더욱이 양심은 형사재판에서 증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형평성 등 논란 불가피 = 대법원이 양심을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로 판단함에 따라 큰 파장이 예상된다. 당장 현역복무자와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 지난 8월 30일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변론 때도 이 같은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당시 검찰 측은 “대체복무제 도입까지 1년 넘게 남은 상황에서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가 내려진다면 그 기간 현역복무자는 어떡하느냐”면서 “대체복무를 하지도 않았는데 군대를 면제받게 됨으로써 생기는 파장이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가 6월 28일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5조 1항을 헌법불합치로 판단하며 2019년 말까지 관련 입법을 주문, 법에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검찰은 주관적 요소인 양심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문제도 지적했다.

◇판결의 배경 =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법원이 문재인 정부 들어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로 대거 교체된 상황과 6월 28일 헌법재판소의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이번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지난 2004년 이후 하급심에서 무죄 선고가 110여 건 나오는 등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대법원과 다른 판단을 내놓는 하급심이 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엇갈린 평가 =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을 반대해온 텀 레이니 스미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간사는 “역사적 판결을 환영한다”며 “양심의 자유가 마침내 한국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은 “사법부의 전향적인 판단을 환영하며 대체복무제도 법원의 결정 취지를 존중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반면, 김영길 바른군인권연구소 대표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며 “유엔 인권이사회, 제네바 인권고등판무관실에서도 대체복무제는 그 나라 여건에 맞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정환·김수민·윤명진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