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정은(오른쪽)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5일 수석대북특사로 북한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반갑게 악수를 하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보이는 인물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연합뉴스

■ 北보도로 본 ‘면담’ 의미

평창올림픽 성공 평가하며
“남북 다방면 대화·접촉 논의”

군사회담·인도교류 이어질듯
通南封美속 남북관계에 올인

핵문제 대신 ‘긴장완화’ 발언
核유예 반대급부 요구 가능성

비핵화 기대수준 못미친 듯
北요구 - 美설득 ‘중재’ 난제

■ 조선중앙통신 보도 만찬 논의 내용

① 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평창동계올림픽) 평가
② 북남관계 개선과 조선반도 평화와 안정 보장 문제
③ 수뇌 상봉(정상회담)과 관련한 의견 교환과 만족한 합의
④ 조선반도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 완화에 대한 의견 교환

북한은 6일 대북특별사절단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면담 결과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평창동계올림픽 평가 △남북관계 개선 △남북정상회담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 등과 관련해 특사단과 의견을 교환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만족한 합의를 보시었다”고 표현했다. 청와대도 면담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제하면서도 “실망스럽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남북관계 개선 등에 관해서는 상당한 의견 접근을 보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국제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으로부터 기대했던 답변을 듣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성과 =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특사단이 북한 대표단 파견 등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자 “한 핏줄을 나눈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며 “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가 우리 민족의 기개와 위상을 내외에 과시하고 북과 남 사이에 화해와 단합, 대화의 좋은 분위기를 마련해 나가는 데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신년사에서 동계올림픽에 대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 우리는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신년사로 평화올림픽으로서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남측은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북측은 공화국 창건 70돌로 올해가 다 같이 의의가 있는 해라고 밝혔다. 북측의 도움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진 만큼 자신들의 창건 70주년 기념에도 남측의 협조를 바란다는 뜻을 깔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북관계 개선 = 북한은 남북관계의 적극적인 개선 의지도 강조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세계가 보란 듯이 북남관계를 활력 있게 전진시키고 조국통일의 새 력사를 써나가는 것이 우리의 일관하고 원칙적인 립장”이라고 밝혔다. 통신은 “북과 남 사이의 다방면적인 대화와 접촉,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해 나가기 위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누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합의한 군사당국회담 등의 일정이 조만간 확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군사당국회담을 언제 한다든지 그런 식의 추가 합의와 발표가 있을 수 있다”며 “다른 교류·협력과 관련해서도 언제 어떤 회담을 열 것인지에 대해 실무 차원의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군사당국회담 외에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 등이 거론된다. 우리 정부는 그간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차원 교류를 강하게 주장해 온 바 있다. 국제적 제재와 관련이 없는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지원, 문화 교류 사업 등도 합의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특사단 방북을 기점으로 남북 교류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처럼 활발해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남북관계에 거의 올인하고 있다”며 “미·북 대화를 원하면 남측이 미국을 설득해 여건과 명분을 만들어 보라는 것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북한이 남한을 이용해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미·북 대화를 시도하는 전략을 더 노골화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의도에 끌려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북 중재 외교를 천명하고 있지만, 대화의 매듭을 풀기 위해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기 시작하면 결국 ‘비핵화가 대화의 전제조건’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혀온 미국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반도 군사 긴장 완화 =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내용에는 비핵화나 핵·미사일 실험 문제 등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고, ‘조선반도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 완화’라는 김 위원장의 발언만 포함됐다. 우리 특사단이 미·북 대화를 위한 비핵화 조치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유예) 등을 요구하고, 이에 북측이 한·미 군사훈련이나 미국의 전략자산 배치 중단 등의 반대급부를 내놓으라고 맞서면서 주목할 만한 의견 접근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다만 정의용 수석대북특사가 방북하기 전 대국민 인사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비핵화 의지를 전달하겠다”고 한 만큼 이번 방북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메시지는 확실히 전달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우리가 ‘실망스럽지 않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생각했던 최저 수준 정도의 합의가 이뤄졌을 수도 있다”며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등의 조건을 붙여 비핵화를 얘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북한 측 반응을 봤을 때 비핵화에 대한 입장이 바뀌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며 “다만 특사단을 대하는 태도를 봤을 때 비핵화를 대화의 조건으로 걸고 있는 우리 쪽에 예우 수준의 ‘선물’을 줬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김병채·유민환·김영주 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