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엔 기금·소녀상 등
정부 부인했지만 합의
전략 부재… 협상력 논란

한·일 양국 정부가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들 두고 극적 타결에 이르며 양국 관계 개선이 탄력을 받을 것이란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외교력, 협상력이 일본 정부의 ‘언론 플레이’에 갇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일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한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명의의 사죄 표명과 일본 측의 위안부 지원 재단 설립 기금 출연, 양국 정부 간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여기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8일 한·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 측이 요구하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이전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들은 지난 24일 오후 아베 총리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을 위안부 문제 특사로 파견하기로 하면서부터 외교장관 회담 당일인 28일 오전까지 일본 언론들이 줄지어 보도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교도(共同)통신 등 일부 일본 언론은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한국 내에 설치하고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10억 엔(약 97억 원)을 출연한다는 기금 규모까지 양국 발표에 앞서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반면 한국 정부 측은 이런 보도들이 나올 때마다 ‘협의 중’ 또는 ‘확인 불가’라는 입장으로 사실상 부인해 왔다. 또 외교부 측은 26일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측으로부터 계속 터무니없는 언론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일본 정부도 예민한 현안을 해결하는 회담을 앞두고 협상과 관련한 주요 내용을 자국 언론에 흘리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양국의 협상 과정과 합의 내용이 결국 일본의 언론 보도 내용들과 거의 일치하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한국의 협상력이 일본의 언론 플레이에 가로막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보다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