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한고비 넘기고… 김대환(오른쪽)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이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노사정 대타협 합의’를 발표한 후 김동만(왼쪽)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일방추진 않겠다’ 단서
향후 법제화 과정 ‘암초’

경총 “구체성 떨어진 합의
勞, 지침거부 명분될수도”

政 “충분한 협의하겠지만
끌려다니지는 않을 것”

勞 일각 “3월 상황과 같아
쉬운 해고 길터 줘” 불만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노동시장 개혁 방안에 대해 전격 합의를 이룬 것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는 전제 조건을 담은 중재안이 핵심 역할을 했다.

◇‘노사 합의’전제조건의 모호성= 한국노총은 정부의 저성과자 해고 요건 가이드라인과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지침 등 2대 쟁점을 의제에서 완전히 삭제해야 한다며 지난 4월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4개월 만에 노사정위로 복귀하면서도 2개 쟁점을 빼지 않는 한 합의가 불가하다는 강경 입장을 유지했다. 정부 역시 2대 쟁점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의제라는 태도를 굽히지 않으면서 13일 잠정 합의 전날까지도 합의 결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합의의 물꼬를 틔운 중재안에는 우선 2대 쟁점의 추진 주체가 ‘정부’가 아닌 ‘노사정’으로 명시됐고,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단서가 달렸다. 저성과자 해고요건이 법제화될 때까지 근로계약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한다는 조항도 추가됐는데, 이는 법제화에 장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당장 정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정부 측의 주장을 수용한 부분이다. 그러면서도 ‘(경영자의) 오남용 방지를 위해 노사정은 공정한 평가 체계를 구축한다’는 내용도 추가됐다. 하지만 정부와 경영계가 여전히 “공정한 해고란 없다”고 주장하는 노동계와 머리를 맞대 지침을 만들기부터 어렵고, 앞으로 법제화하는 것은 더 험난한 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계는 이처럼 ‘충분한 협의’ ‘공정한 평가 체계’ 등 겹겹으로 달린 추가 조항들이 지닌 ‘불명확성’이 앞으로 노동개혁을 표류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노동계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합의안”이라며 “단서가 구체적이지 못해 노동계가 지침 마련을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충분한 협의를 전제로 하더라도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부는 이른 시일 내에 협의체를 구성하고 합의 방식과 시점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 지침 실효성은?=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을 만들더라도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윤창현(경제학) 서울시립대 교수는 “노조가 가이드라인의 맹점을 악용해 소송을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합의”라며 “법제화 과정까지는 첩첩산중의 난관이 가로놓여 있는 만큼 소수 노조의 이익만을 챙기는 행위가 나타날 경우 여론의 강한 압박을 통해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동근(경제학) 명지대 교수는 “지침을 마련한 뒤 여러 어려움이 생긴다면 오히려 법제화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며 해법을 제시했다.

반면 한국노총 내부에서는 “3월 상황과 달라진 게 없다. 정부로 하여금 ‘쉬운 해고’ ‘임금삭감’으로 가는 길을 터주는 합의다”라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당장 14일 오후 합의안을 확정하기 위해 열리는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산별노조에 막혀 합의안이 부결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 고위 관계자는 “토씨 하나 가지고 말이 달라지는데, 이번 합의문은 문구 하나하나가 (3월 합의 초안과는) 굉장히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다”며 “한국노총도 100% 만족은 안 하지만 정부가 강행하는 것은 막은 셈”이라고 말했다.

김영주·박정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