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여부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는 9일에도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않은 채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한국의 가입을 권유 또는 압박하는 가운데 미국은 이에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어 선뜻 한쪽 입장에 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실리와 명분 모두 고민 지점이 있다. 외교적으로 ‘협의하겠다’ ‘평가한다’는 표현은 당장 의사결정을 미루고 시간을 벌겠다는 전략도 담겨 있지만 부정에 가깝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정상회담에서도 이 같은 고민이 드러난다. 중국 측의 AIIB 참여 권유에 대해 한국이 확답하지 않음으로써 정상회담 뒤 발표된 한·중 공동성명에는 AIIB가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부속서에서 “양측은 아시아 경제 발전을 위한 인프라 투자 확대 필요성에 공감했고, 중국 측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설립 관련 제안을 한국 측에 설명했으며, 한국 측은 이를 높이 평가했다”고 적시한 정도다. 완전한 부정은 아니지만, 긍정적 검토 역시 아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새로운 국제기구가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 측에서는 기존의 세계은행(WB)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역할과 겹친다며 굳이 추가로 기구를 설립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한 뒤 “그래서 추후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정부는 이에 대해 참여 여부를 결정한 것이 아니며 더 논의하고 협의해 간다는 입장”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4일 한·중 정상 특별오찬 관련 브리핑에서 “한국을 포함해 여러 국가 사이에 다자간 실무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앞으로 AIIB 설립은 자본금 문제나 지배구조 문제 등 여러 가지 협의할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런 주요 사항에 대해 검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세영 기자 g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