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에 대해 연일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중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신질서에 한국이 편입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지정학적으로 이미 한반도를 대중국 봉쇄의 ‘완충지대(buffer zone)’로 확대하려는 전략적 구상을 하고 있는 중국이 경제적으로도 이미 한국과 최대 교역국인 점 등을 이용해 한국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고 미국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달러를 기축통화로 미국이 구축한 세계질서에 한국을 전초기지 삼아 이에 대항하는 중국 주도의 동북아 금융질서가 세워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이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 의제를 조율하는 단계에서부터 외교채널을 통해 강한 우려를 제기했고, 회담 이후에도 연이어 우려표명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은 이 문제를 그만큼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의 이 같은 경계에 대해 정부의 한 소식통은 9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 미·중 간에 갈등과 협력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측면에서 과거 냉전구도처럼 ‘블록화’된 것은 아니지만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돼 있는 만큼 이런 복잡한 관계 속에서 미국이 기존 이익을 최대한 사수하려고 하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세계은행(WB)과 아시아 개발은행(ADB)이 이미 높은 수준의 지배구조와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단계에서 중국이 한국과 동아시아국가들의 AIIB 가입을 주도하는 것은 미국의 대중국 봉쇄망을 허물어뜨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 주도 국제경제질서를 붕괴시키려는 중국의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보고 미국이 원천 차단에 나선 형국이다.

특히 AIIB의 참여 예상 국가들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중동국가들을 비롯해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친중국가들이 대부분이라 한국의 참여 여부는 미국과 중국 모두에 상당히 민감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외교소식통들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앞서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한국의 AIIB 가입 움직임에 깊이 우려하며 한국 가입 시 양국이 쌓아왔던 우방으로서의 신인도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까지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은 한·중 간 접근에 대해 드러내놓고 불편한 내색을 하면 미국이 원하지 않은 구도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특별한 내색을 하지 않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