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대외 경제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도 전년보다 더 큰 폭으로 국방 예산을 늘린 것은 ‘실력’ 있는 대국의 위상을 갖추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중·일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군사적 우위를 확고히 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동북아시아 군사 긴장이 극에 달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총리는 5일 오전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중국은 책임 있는 대국”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리 총리는 이날 직접 일본을 겨냥해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룩한 승리의 성과와 2차 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수호하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리 총리는 구체적인 나라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일본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앞서 푸잉(傅瑩)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변인도 4일 전인대 대변인 기자회견을 통해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중국 국방예산의 두 자릿수 증가를 예고했었다. 이번 증가로 중국은 지난 1989년 이래 단 한 차례만 빼고 25년째 국방예산을 두 자리로 늘리게 됐다. 특히 올해의 국방예산 증가폭은 지난해(10.7%)보다 많은 것이다. 국방예산 규모에서 중국은 이미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총액은 미국이 여전히 월등히 많지만 미국의 국방예산은 감소 추세다.

특히 중국은 이번 국방 예산을 늘리면서 아시아의 질서와 평화 유지를 위한 실력을 강조해 주목된다. 일본에 대한 리 총리의 이례적인 경고 발언도 심상치 않다. 중·일 갈등은 또 한 단계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당국은 또 연간 경제성장 목표를 기존 7.5%로 유지키로 했다. 전년과 달리 좌우라는 표현을 넣어 유동성을 줬다. 중국은 지난 2005년 이후 연간 8%의 성장 목표를 제시해오다 지난 2012년 목표치를 7.5%로 낮췄다. ‘시진핑(習近平)-리커창’ 지도부 출범 이후 양보다 질적 성장, 성장보다 분배에 초점을 맞춘다는 정책기조를 보여 일부 전문가는 성장 목표의 하락 조정을 예측하기도 했다. 이번에 경제 성장 목표를 유지한 것은 미국과 유럽 언론을 통해 중국 경제의 급격한 하락, ‘경착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확산되자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베이징=박선호 특파원 shp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