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소급 임금 청구는 제한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기존 판례를 최대한 변경하지 않으면서 현실을 반영한 ‘절충안’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기업과 노동조합 측 중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 상여금 통상임금 인정하되 청구는 제한 = 대법원은 1개월 초과 단위 상여금 및 수당에 대해서도 일정 요건을 갖추면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를 유지했다. 재계에서는 통상임금 관련 논란에서 1개월 단위로 지급되는 금품에 대해서만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상여금은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고정적 임금에 해당된다”고 판결했다. 전원합의체 대법관 13명 중 김창석 대법관만이 “상여금이나 1개월이 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수당은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라도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없다”고 소수 의견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하지만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그동안 받지 못한 임금을 소급 청구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제한을 뒀다. 기업 측에서 주장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논리를 받아들인 것이다. ‘신의칙’은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권리 행사를 해선 안 된다는 것으로, 법조문에 명시돼 있진 않지만 근대 사법의 대원칙으로 인정되고 있다.

대법원은 “노사가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신뢰해 합의했을 경우, 근로자의 추가 임금 청구로 인해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서 용인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이상훈·이인복·김신 대법관은 신의칙 적용에 반대하는 소수 의견을 냈다.

◆ 논란의 여지는 남겨 = 대법원은 근로자의 소급 청구를 제한하는 경우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되는 경우’라고 명시해 또 다른 다툼의 여지를 만들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근로자들의 소급 임금 청구에 대해 어디까지 중대한 어려움을 주는 것으로 봐야 할지에 대해서는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은 개별적 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수밖에 없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법리적 논란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현실을 반영한 흔적이 보인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대법원 입장에서는 기존에 판결한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산업 현장의 현실을 고려하기 위해 노력한 판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병채 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