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로 촉발된 논란이 한·미·일 대 중국의 구도로 재편되는 형국이다. 중국의 공격적 행보가 부담스러운 미국은 적극 방어에 나서는 모양새이고, CADIZ와 겹치는 일본과 한국 역시 결과적으로 ‘공조’하는 모양새가 됐다. 중국은 주변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CADIZ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CADIZ의 무력화를 노리는 한·미·일과 갈등이 불가피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은 다양한 공식·비공식 채널을 통해 공동 대응 수위와 방향을 논의 중이다. ‘안호영 주미대사와 미 국무부 채널’ ‘외교부와 미 국무부 및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채널’ ‘청와대와 백악관 채널’ 등이 그것이다.(문화일보 11월 27일자 1·3면 참조)

외교·안보 당국의 한 주요 관계자는 29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방공식별구역은 관할하는 국제기구도 없고 룰도 없어 국가 간에 협의해서 합의를 도출할 수밖에 없다”며 “중국의 선포를 계기로 관련 국가들이 그 단계에 들어간 것이고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결국 미국과 중국, 미국과 일본 사이에 해묵은 갈등이 방공식별구역 문제를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이라며 “당분간은 한·미·일 대 중국의 구도가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 우리가 미·중 갈등, 중·일 갈등 사안에까지 발을 들여야 할지는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중국은 CADIZ를 서해 지역까지 확대할 것이라는 ‘신호’를 내비치는 등 강경한 입장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군 기관지 제팡쥔바오(解放軍報)는 “어떤 국가도 중국이 자기의 핵심 이익과 정당한 권익을 포기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공동 대응 기조를 확인하고 해법 모색에 나서는 중이다. 27일 미국에서 외교부 고위 관계자와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 간 비공개 회동을 한 데 이어 한국에서도 김규현 외교부 차관과 에반 메데이로스 백악관 NSC 선임보좌관이 만났다. 메데이로스 선임보좌관은 조 바이든 부통령의 다음주 방한에 앞서 의제 조율차 한국을 찾았지만 이 자리에서 CADIZ와 관련한 미국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이 외에도 백악관과 국무부, 청와대와 외교부, 국방부 등 한·미 관계 부처 사이에도 다양한 채널이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공식별구역 논란이 자연스레 동북아 세력 재편의 전장이 되면서 한·미·일 대 중국의 구도로 재편되고 있는 만큼 한국도 장기적인 안목과 전략을 갖고 임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한 관계자는 “사태의 밑바닥에는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가 있고 오랜 미·중 간 경쟁과 협력 관계가 있는 만큼 바이든 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계기로 사태가 바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