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일 관계 복원 주문에 한국 정부는 문제의 당사자인 일본의 결자해지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역사·영토 도발을 일삼아온 일본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입장에서도 동북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일본과 계속 갈등을 이어가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국내외 정치 상황이 일본이 먼저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한국이 관계 회복에 나설 방법이 거의 없다는 인식이다. 이런 와중에 일본에서는 계속 박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하하는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어 한·일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8일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했던 발언들을 뒤집고 상처를 후벼 파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하기는 힘든 일”이라고 밝혔다. 결자해지 원칙과 관련,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역사 인식 문제에서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국민을 납득시키는 상황으로 갈 수 있지 않겠느냐”며 “한국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일본 측에) 결자해지적 측면이 많이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한국으로서는 운신의 폭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다만 정부는 일본과의 대화 가능성 자체를 닫지는 않았다. 외교라인 관계자는 “한국 입장에서도 일본이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며 “예를 들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잘 풀어도 한·일 관계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장관도 “‘미싱 링크’(잃어버린 고리)라고 할 수 있는 한·일 관계 안정화에 대해 우리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의 한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은 28일 발매된 최신호에서 박 대통령을 ‘금주의 바보’ ‘악담을 퍼뜨리는 아줌마’라고 비하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슈칸분슌은 ‘박근혜의 아줌마 외교’라는 제목의 글에서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 문제와 군 위안부 문제로 소동을 피우고 있다”며 박 대통령을 ‘금주의 바보’라고 조롱했다. 슈칸분슌은 지난달에는 아베 총리가 측근에게 “한국은 어리석은 국가”라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를 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막말과 막글은 부끄러운 일이고 스스로 평생 후회하면서 살아갈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며 “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비판했다.

민병기·김하나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