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호소’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기초연금 지급 축소 방침에 대해 사과 내용을 담은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기초연금 등 논란이 되고 있는 대선 복지 공약 축소 논란과 관련해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답은 ‘공약 포기’가 아닌 ‘공약 조정’이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을 통해 “공약의 포기는 아니다”며 “국민과의 약속인 공약은 지켜야 한다는 신념은 변함이 없다”는 취지로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라며 애초 예상됐던 ‘유감 표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머리를 숙였다. 향후 공약 이행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면서 ‘대국민 호소’라는 형식을 담아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이다.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며 ‘공약가계부’까지 만들도록 한 박 대통령이 결국 복지 공약 축소 카드를 꺼낸 이유는 현실적 장벽 때문이다. 경기 회복이 더뎌지면서 올 상반기에만 10조 원 가량의 세금이 덜 걷힐 정도로 정부 재정 상황에 ‘빨간 불’이 켜졌고, 이 같은 사정은 내년에도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당초 박 대통령은 부처 간 칸막이 제거를 통한 재정 낭비요인 제거,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해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세수 부족’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에 결국 소신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공약 포기’가 아닌 ‘공약 조정’임을 분명히 한 것은 신뢰와 원칙이라는 자신의 정치철학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당장 상황이 어렵더라도 국민과의 약속은 지키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음으로써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공약 파기’ ‘대국민 사기극’ 등의 거친 표현으로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야당 등 반대세력의 비판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포석으로도 읽힌다. 향후 공약의 완전 이행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써 비난의 예봉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으로 복지 공약 후퇴 논란이 사그라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현실의 장벽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대선 1년도 안돼 공약 조정 방침을 밝힌 것은 애초 공약 구상 단계에서부터 재정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재정 여건은 감안하지 않은 채 표를 얻기 위해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야당은 내년도 예산안을 ‘거짓말 예산안’으로 규정, 이번 정기국회에서 대대적인 예산안 수정을 시도할 예정이어서 박 대통령의 구상대로 예산안 처리가 이뤄질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 ‘공약 조정’ 결정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 역시 박 대통령에겐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친여권 성향이면서 국가 재정 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전문가 및 정치권 인사들은 “대통령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을 해 왔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