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담록이 국가기록원에 없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한 것을 계기로 노무현정부의 회담록 폐기가 사실로 굳어지는 가운데 과연 회담록 폐기에 노무현정부의 누구누구가 관여했으며 어느 선까지 폐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는 향후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주도의 폐기 사실이 명확히 증명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지만 공교롭게도 진실에 근접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노무현정부 인사들은 최근 일제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23일 구여권을 포함한 여야 정치권 및 검찰 등에 따르면 노 정부 임기말 회담록 폐기 작업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소수의 인사들의 주도로 단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워낙 극비리에 진행된 탓에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의 극히 일부 고위층 인사만이 알고 있을 것으로 일단 추정된다.

이 가운데에서도 당시 녹음 파일을 풀어 회담록을 만든 주역인 조명균 당시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이 전후 맥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폐기 과정을 진행한 ‘정무적 책임자’였을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보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도 기록 담당으로 배석했으며 회담록 최종본을 작성한 인물이다. 일부 언론과 검찰 등에 따르면 조 전 비서관은 올해 1월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고소고발 사건에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석,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국정원에서 관리하고 청와대에 두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조 전 비서관은 “회담록 자체를 완전히 폐기하려던 게 아니라 국정원에 한 부 보관돼 있다는 것을 감안, 이지원(e知園)에서의 삭제를 지시했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조 전 비서관이 회담록의 생성부터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책임진 것으로 보인다. 2007년 12월 ‘이지원’ 시스템으로 회의록 최종본을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백종천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실장도 실무 책임 라인의 윗선에 있는 인물이다. “100% (국가기록원에) 이관했다”고 공언했던 김정호 전 청와대 기록관리비서관도 관련자로 꼽힌다.

이밖에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폐기 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개연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원장은 정상회담에 수행했던 것을 물론, 조 전 비서관과 함께 회담록 작성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어서 진실의 열쇠를 쥔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이밖에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의 배석자였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도 업무상 회담록 폐기 여부를 사후에라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로 거론된다.

하지만 가장 큰 관심 대상은 회담록의 작성 및 폐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문 의원만큼 진실에 근접해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일각에선 문 의원이 국가기록원 자료 열람을 강력히 추진한 점을 들어 그조차 모르게 노 전 대통령과 실무진 간 ‘직거래’ 형식으로 폐기가 추진된 게 아니냐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에라도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는 1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던 그가 국가 1급 기밀에 속하는 기록의 폐기에 대한 포괄적 책임은 면할 수 없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김만용 기자 my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