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간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담록을 열람하러 갔던 여야 대통령 기록물 열람위원들이 두 차례나 열람에 실패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회담록 폐기를 지시했으며 그에 따라 국가기록원으로 자료들이 이관되지 않은 것을 실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구 여권 일각에서는 ‘폐기’ 혹은 ‘봉하마을 은폐’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봉하마을로 보내진 것 역시 사실상의 폐기라는 점에서 회담록 공방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가기록원의 ‘부실 보관’ 가능성이나 ‘전산 시스템 오류’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일치된 견해여서, 폐기 의혹은 사실로 굳어지는 상황이다.
만에 하나 정권 차원의 폐기 지시와 실행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이는 엄청난 ‘헌정문란’ 혹은 ‘국기문란’ 사건으로 상당한 후폭풍이 일 전망이다. 특히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의원 등 친노(친노무현) 인사들이 회담록 폐기 사실을 알고도 그 공개를 추진했다면 ‘정치적 쇼’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대선 국면이었던 지난해 10월 17일 노 전 대통령이 회담록을 폐기했다는 주장은 이미 문화일보를 통해 보도돼 쟁점이 된 바 있다. 당시 이한구 원내대표는 문화일보 보도를 본 뒤 “너무나 충격적으로, 이는 역사기록을 말살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었다. 이에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이 폐기를 지시한 적이 없었고 모든 기록물은 이관됐다”고 반박했었다. 당시에 이 같은 주장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번에 국가기록원에서 두 번의 열람작업 동안 회담록이 나오지 않으면서 노 전 대통령의 폐기 지시설의 신빙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18일 “2007년 회담록은 국가정보원과 청와대 등 두 군데에서 보관해 오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인 2007년 말∼2008년 초 폐기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시에 따라 청와대 보관용은 폐기됐기 때문에 국가기록원으로 옮겨져 보관돼 있어야 할 회담록은 없다”면서 “국정원은 폐기하지 않고 현재까지 보관 중”이라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상회담록은 회담이 열렸던 2007년 10월 중 국가정보원이 문서 형태로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다. 같은 달 청와대에서는 최종본을 완성하고 이지원(e知園) 시스템으로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1부는 청와대에서 보관했고, 다른 1부는 국정원에서 보관하게 된 것이다. 이후 2007년 말 청와대는 회담록을 이지원 시스템으로 전산화한 뒤 국가기록원에 이관했다는 것이 노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이다.
여당의 한 의원은 “회담록이 어떤 집단에 의해 폐기 지시됐다면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벌여야 할 사안”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폐기를 지시한 것이라면 역사의 심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문 의원 등 당시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이 이 같은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기 때문에 분명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회담록 최종본을 청와대 안보정책실에서 완성한 다음에 노 전 대통령에게 이지원으로 보고를 했다”면서 “최종본은 남겼고 대통령 재가가 난 이후 안보정책실에서 (다른 1부는) 국정원에 넘겼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2007 남북정상회담 회담록 폐기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문화일보(사진)는 지난해 10월 17일자에 “청와대가 보관하고 있던 2차 정상회담 회담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폐기됐다”고 단독 보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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