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기록원에 보관돼야 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담록을 폐기했다면, 이유가 뭘까. 여권 고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명박정부 출범 이전에 회담록은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가지 않았고, 노 전 대통령 임기 말에 회담록이 사라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무자들의 실수로 누락됐을 수 있지만, 그렇게 중요한 회담록이 없어졌다면 노 전 대통령이 회담록 공개에 따른 후폭풍을 예상해 폐기를 지시한 게 아니냐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특히 녹음 파일까지 국가기록원에 전달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으로 관련 기록을 누락시켰다는 정황을 높이고 있다.

회담록이 증발됐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나는 의도적인 폐기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기록원이 아닌 제3의 장소에 별도 보관했을 가능성이다. 폐기든 은폐든, 노 전 대통령 측은 모두 부인하고 있지만, 노 전 대통령 시절 회담록이 국가기록원으로 가지 않았다는 여권의 주장대로라면 폐기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18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중요한 것은 회담록을 국가기록원으로 넘기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회담록을 폐기했거나 봉하마을로 가져갔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임기말은 정권교체가 된다는 것을 모두가 예상하고 있었을 때”라며 “정권 말 노 전 대통령이 문제 소지가 있는 것들을 모두 없앴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 폐기 주장은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나온 적이 있다. 김 전 원장은 “2007년 10월 회담록을 2부 만든 다음에 나머지 회담록을 모두 폐기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전 원장은 나중에 “기억이 분명치 않다”고 물러섰지만, 적어도 국정원 내에서조차 회담록 폐기 행위가 있었음을 시사한 것이다.

결국 여권 관계자 및 김 전 원장의 말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정상회담 직후 국정원을 통해 회담록을 2부 만들었고, 이를 청와대와 국정원이 1부씩 보관했다. 청와대는 국가기록원으로 넘겨야 할 이 회담록을 넘기지 않고 폐기했으며, 동시에 국정원 본에 대해서도 폐기 지시를 내렸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폐기 지시를 받은 국정원은 그러나 내부적으로 녹음 파일을 보관하고 있다가 정권이 바뀐 다음 다시 회담록을 만들었고, 이것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회담록이라는 것이다. 정보기관의 속성상 새 정권 줄대기용인 셈이다.

노 전 대통령 측과 민주당은 이명박정부가 회담록을 없앴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가 굳이 노 전 대통령의 문제 발언을 덮어줄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회담록 폐기의 진실은 노 전 대통령만이 알고 있는 것일까.

천영식 기자 kka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