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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밥상 여행 / 손현주 지음 / 앨리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은 언제나 ‘과거형’으로 되새겨지게 마련이다. 젊은이들에게도 그럴진대 중년 이상의 나이라면 더 그렇다. 그 추억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명절이라면 가족들이 한데 모여 음식을 나누는 장면부터 떠올리니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명절에 떠올리는 음식이나 맛이란 ‘욕망의 대상’과는 멀다. 좀 더 나은 맛을 찾아서 불원천리를 마다않는 게 욕망으로서의 음식이라면, 거친 음식일지언정 혀끝으로 추억의 맛을 느낀다면 그건 바로 정서로서의 음식에 더 가깝다.

이즈음 미식 관련 책들이 앞다퉈 쏟아지고 있지만, 이런 책들은 대부분 욕망으로서 음식을 다루고 있다. 음식이 가질 수 있는 지상 최대의 가치는 ‘맛’이라는 게 이런 책들이 쏟아내는 결론이지만, 음식에는 혀끝에서의 단맛이나 욕망만으로도 가늠되지 않는 더 깊은 것이 있음을 이 책은 가르쳐 준다.

저자가 진주의 수복시장에서 60년째 팥빵을 빚어내는 무뚝뚝한 할아버지의 추억담과 함께 팥물을 끼얹어내는 달큼한 빵 맛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을 보자. 저자가 팥빵 맛을 감별해내는 건 혀끝뿐만 아니라, 사려 깊은 시선과 정서다. 저자는 빵을 빚는 오래된 고탁(古卓)을 보며, 낡고 오래된 것이야말로 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역사이자 인간의 밑바닥까지 치유하는 삶의 내성임을 성찰하고 주인에게 ‘장사가 잘되더라도 이건 바꾸지 마시라’고 말을 건넨다. 손님의 질문에 대꾸하지 않는 주인 할아버지를 두고 누군가는 ‘불친절하다’고 타박하겠지만, 저자는 그 불친절마저도 ‘본디 성품이 그러하신 듯하다’고 이해한다.

저자는 이렇게 한 그릇의 음식을 앞에 놓고 그 음식을 만든 이의 과거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억까지 뒤집어 유년시절의 추억담을 불러낸다. 예컨대 마라도의 자장면을 시켜 놓고는 그 자장면의 맛보다는, 달큼하고 자극적이었던 자장면 냄새로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 대해 말하고, 구룡포에서 과메기를 주문하면서 소주 한 병을 곁들여 시켜 놓고는 고래잡이 시절의 흥청거렸을 부두를 상상한다. 이런 식의 접근을 통해 저자는 ‘어떤 맛집을 찾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보다는 그 음식이 이끌어 내는 추억이나 정서와 함께 음식이 지닌 진면목을 독자들에게 세심하게 알려 준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