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철학으로 읽는 옛집 / 함성호 글, 유동영 사진 / 열림원

압축성장의 시대를 거치면서 과거와 가장 달라진 것은 아마도 집이 아닐까. 저자 말마따나 ‘다짜고짜 벽을 치고 지붕은 엿가락 굵기의 쇠봉으로 잇고 거기에 시멘트를 부어 만든 집’이 지어지면서 우리는 처마를 잃고 마당을 잃었다. 넉넉한 처마와 너른 마당을 가진 전통미 넘치는 집은 이제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집이 사라진 자리에 빼곡하게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서양이 근대를 기획하면서 도시 구축의 목표를 나란한 규격으로 통일된 집으로 구성된 효율적인 도시에 두었기 때문이겠다. 이렇게 지어진 집에는 뿌리도 정신도 없다.

하지만 전통건축은 달랐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의 전통건축의 뼈대가 옛사람들의 정신과 철학이란 걸 유감없이 보여준다. 한 편의 시가, 혹은 세상을 보는 철학이 어떻게 집의 건축으로 구현됐는지를 입체적으로 분석해낸다는 것이다. 저자의 시선으로 읽어낸 경북 경주 이언적의 집 ‘독락당’을 보자. 이언적이 독락당을 지었을 때는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한 채 낙향했을 무렵. 그는 중국 북송의 정치가 사마광의 글 ‘독락원기’를 읽는다. 독락원기는 낙향에 대한 자족을 담은 글. 아마도 앞서 살았던 비슷한 처지의 인물인 사마광의 글에서 이언적은 세상을 헤쳐 나갈 해답을 보았던 모양이다. 저자는 자신을 버린 세상을 등지고 자연 속에 소요하는 집주인의 낙향의 정신이 집의 공간 배치 등을 통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 준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이름난 학자들에 의해 성리학적 전통으로 지어진 집들을 들여다본다. 남명 조식의 산천재와 퇴계 이황의 도산서당과 다산초당, 김장생의 임이정, 우암 송시열의 남간정사 등은 집의 형태나 건축적 의미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저자는 집을 지었던 사람의 생각과 그 사람의 이야기에 더 몰두하는 듯하다. 결국 집과 건축을 빌려서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셈이다.

이런 성리학의 대가들의 것이 아니더라도 옛집에는 그 집을 지은 이의 향기와 품성이 배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집을 다 잃고 말았다. 옛집을 잃는다는 건, 그 집이 되살려내는 정신과 추억으로부터도 멀어지고 있음을 말한다. 다 잊었던 것으로만 알았던 추억들을 불현듯 문득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 사라지면서 추억의 크기와 깊이가 그만큼 줄어들어 버렸다는 얘기다. 아쉽게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