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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집 / 권산 지음 / 반비

되돌아보면 늘 그랬다. 아버지는 매사에 어려웠다. 어머니처럼 세심하지도, 다감하지도 않았다. 여간해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당신은 늘 강하고 단단했다. 간혹 깊은 속마음을 짐작해볼 수 있는 때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짐짓 자식들에게조차 아버지는 거리를 두었다. 어머니가 무조건 자식의 손을 들어줬다면, 아버지는 자식 앞에서 늘 단단한 도리의 깊은 뿌리를 말했다. 그래서일지 모른다. 아버지가 세월에 하나둘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러웠던 것은…. 이 책은 그 아버지가 오래된 집과 함께 늙어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책은 겨우 지탱하고 있는 낡은 한옥 송석헌과 그 한옥에 홀로 기거하고 있는 아버지 권헌조 옹에 대한 목격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연찮게 방송사 다큐멘터리 제작팀에 합류했던 사진작가는 대대적인 보수를 앞둔 낡은 한옥과 평생 ‘사람의 도리’를 궁구해온 유림 어른 권 옹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카메라를 든 저자가 처음 송석헌을 찾았을 때, 가장 의아했던 것은 집 뒤편의 산소 주위로 뚜렷하게 찍힌 길의 정갈한 자취였다고 했다. 이튿날 새벽, 저자는 집주인 권 옹이 산소로 올라가 문안인사를 드리는 모습을 목격한다. 산소 주위로 난 자취는 권 옹이 조석으로 조상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던 발길이 만든 길이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반복된 동선이 만들어 낸 한뼘 남짓의 길. 권 옹을 따라가며 정신없이 200장의 사진을 찍어냈다는 저자의 설명이 이렇다. “그 길은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위한 길이었다. 그 길에는 잡념도 공상도 없었다.”

저자의 카메라는 고쳐 짓기 전의 오래된 집의 풍모를 기록하고, 공사 중인 집에서 나와 요양병원에 의탁하고 있는 권 옹을 번갈아 가며 기록하다가 끝내 뜻하지 않았던 노인의 부고를 접하게 된다.

애초에 맡겨진 일이 아니었음에도 저자는 상여의 뒤를 따라 노제와 장례를 기록했으며 한 해쯤 뒤에 말끔하게 고쳐진 송석헌을 들렀다가 권 옹의 묘소를 찾아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그 앞에서 비로소 깨달은 권 옹의 가르침. “이러나저러나 나는 어차피 지금을 살고 있다. 온전한 나로서 세상을 살아내는 것. 권헌조 어르신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그것이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