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예고하면서 지난 10년간 북핵 협상의 기본 원칙이었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원칙’도 사멸 직전 위기에 처하게 됐다.

북한이 지난해 4월 헌법 전문에 ‘핵보유’ 사실을 명기한 데 이어 조만간 3차 핵실험까지 감행하면 제2차 북핵위기를 계기로 2003년 출범한 6자회담도 10주년을 맞는 올해 CVID 원칙과 함께 용도 폐기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제안한 일괄타결식 ‘그랜드바겐(Grand Bargain)’도 비슷한 운명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25일 외교통상부 등에 따르면 CVID는 미국이 2003년 6자회담 개시와 함께 북측에 제기한 비핵화 원칙이다. 북한이 다시는 핵 개발에 나설 수 없도록 완전하면서도 불가역적으로 핵을 폐기시키되 한·미·일·중·러 등 6자회담 참가국이 핵폐기를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한·미는 이 원칙에 기반해 ‘행동 대 행동’ ‘말 대 말’ 방식으로 북한과의 핵협상에 나섰고, 2005년 9·19 공동성명과 그 후속조치인 2·13 합의, 10·3 합의를 이끌어냈다. CVID 원칙의 비핵화를 9·19 공동성명 기본합의를 바탕으로 단계별로 이뤄나가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2008년 북한 영변의 냉각탑 폭파로까지 이어졌던 북한 비핵화 합의는 같은 해 12월 검증을 둘러싼 북한과 한·미·일 간 입장차로 결렬되면서 유명무실화됐다. 한·미는 이후에도 여전히 CVID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북한이 3차 핵실험까지 감행한다면 북핵 해결을 위한 협상·대화론 자체가 설득력을 잃게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CVID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질 공산이 크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9월 미국외교협회 연설 및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제안한 ‘그랜드바겐’도 마찬가지다. 그랜드바겐은 CVID의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보텀 업(Bottom Up)’ 방식과는 달리 어려운 문제를 먼저 푸는 ‘프런트 로딩(front-loading)’ 방식의 ‘일괄타결’ 제안이다. 하지만 이 제안은 북한이 2010년 ‘3·26 천안함 침몰’ ‘11·23 연평도 포격’ 등과 같은 잇단 도발로 남북 간에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하고 묻혀 있는 상태로, 북한 핵실험으로 북핵 협상 ‘무용론’이 거세지고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 그랜드바겐 역시 다시 날개를 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