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여야 정치권과 ‘건전재정’을 내세우는 정부의 갈등이 심각하다. 여(與)·야(野)·정(政)의 삼각갈등이다. 중요 정책들을 중심으로 국정 표류까지 우려되는 상태다. 야·정 갈등을 기본갈등으로 해서 여·정 갈등, 심지어는 ‘여야 갈등’ 국면까지 중층적으로 겹쳐있는 상황이다.

‘제사’(정기국회)보다 ‘젯밥’(대선 승리)에만 관심이 많은 정치권 행보에 ‘정치권과 일전도 불사하겠다’며 ‘건전 재정’ 사수에 나선 정부의 의지가 더해져 여·야·정 삼각갈등은 가라앉을 줄 모른다. 이 와중에 국정은 표류하고 민생은 뒷전에 내쳐지고 있지만 정치권과 정부는 서로 ‘네 탓’만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아예 2013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12월 선출되는 대통령 당선자 몫의 예산을 비워두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24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만 0~2세 전면 무상 보육 폐지 방침에 여야는 오랜만에 한목소리를 냈다. 새누리당 정책위원회는 “당·정 간 논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성명서를 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민주당) 의원들도 “정부는 무상보육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추계하는 게 아니라 예산에 맞춰 무상보육 정책을 축소하는 정책후퇴를 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야는 국회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당연히’ 복지부의 방침이 철회되고 무상 보육이 유지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여야 모두 무상보육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저히 무상보육 예산을 감당할 수 없다”는 복지부의 ‘반란’은 정치권의 대선 공약 예산 반영으로 자연스레 ‘진압’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 원내지도부는 대통령 당선자가 마음대로 사용처를 정할 수 있는 예산을 남겨두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내년 예산안 심사를 대선 전에 끝내되, 선거 뒤 당선자측이 공약으로 내건 사항 중 예산에 반영되지 못한 것을 추가해 의결하겠다는 것이다. 차기 정부에서 집행할 예산을 현 정부 임기 내 처리해야 하는 어정쩡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꼼수’지만, 자칫 재정건전성과 정책의 우선순위를 고려하기보다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적 공약을 뒷받침하는 예산만 추가될 가능성이 많다.

정부를 압박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는 ‘한 편’이었던 여야는 자기들끼리의 ‘이전투구’도 계속하고 있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정감사는 유력 대선 후보에 대한 ‘검증 공간’으로 변질되고, 내년도 국가 살림살이를 정하는 예산안 심사는 ‘대선 공약 예산 확보하기’ 전쟁이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많다. 정치권이 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때는 정쟁에 매몰되고, 경제활성화 등 정부를 지원해야 할 순간에는 한목소리로 정부와 맞서는 ‘엇박자’가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